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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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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1.28 16:12
  • 호수 12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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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에 올라오는 씨앗…밤

한문이름이 ‘율자’인 짙은 갈색의 밤은, 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북부아프리카 등이 원산지로서 한국밤·일본밤·중국밤·미국밤·유럽밤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재배하는 품종은 재래종 가운데 우량종과 일본밤을 개량한 품종으로, 서양밤에 비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영양학적으로 뛰어나 우수한 종으로 꼽힙니다. ‘밤’은 밤나무의 씨앗으로, 열매인 밤송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밤가시는 씨앗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입니다. 씨앗인 밤톨을 먹어버리면 새로운 나무로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열매는 씨앗을 보호하고자 껍질에 가시를 달은 것이죠.  

밤이라도 까먹으며 긴 겨울밤을 보내라고, 지난겨울 친구가 보내준 밤이 생각납니다. 몇 년 전 가을, 밤 줍는 일손이 딸린다하여 밤을 주워주러 갔다가, 밤 줍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산골짝을 오르락내리락, 밤송이에 찔리지를 않나, 아무튼 그 뒤로도 밤 수확 철이 되면 혹시나 부를까 은근히 부담도 왔습니다. 철마다 보내오는 밤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받아먹기가 정말 염치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밤을 깝니다. 단단하여 까기는 힘이 들었으나, 냉장고에서 숙성이 된 탓인지, 약간 수분이 날아간 탓인지 맛이 좋습니다. 드문드문 벌레퉁이도 있습니다. 단단하게 생긴 것에 비하여 보관할 때 예민한 밤을 바람구멍 하나 없이 꽁꽁 싸매 보관한 탓이었습니다. 오도독 오도독 밤 씹히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따끈따끈하고 노란 군밤은 계절에 상관없이 즐겨 먹습니다. 
대전 탄방동 4거리 횡단보도 옆에는 젊은 군밤장사가 있습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군밤 서너 알을 줍니다. 콩보다 조금 큰 밤이지만 파란불을 기다리며, 어쩔 수 없는 척 횡단보도를 건너며 우물우물 씹는 맛은 별미랍니다.
어디 군밤뿐인가요? 탄수화물·단백질·기타지방·칼슘·비타민 등이 풍부하여 발육과 성장에 좋은 밤은, 여러 가지 요리의 재료로 많이 사용합니다.

 직접 만든 음식으로 과거의 나쁜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조린밤, 일명 보늬밤은 유명요리가 되었습니다. 겉껍질만 벗긴 밤에, 속껍질의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베이킹소다에 담가 두었다 끓이기를 3번 하고나서, 다시 설탕을 넣고 조려냅니다. 밤 특유의 향과 달고 부드러운 맛이 많은 보늬밤은 2~3개월 밀폐된 용기에 보관하였다 먹으면 숙성이 돼 더 좋은 맛이 풍부해진답니다. 물에 삶고 또 삶고 지켜 서서 저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중간에서 멈추고 말았더니, 보늬밤 대신 밤맛탕이 만들어졌습니다.

삶은밤에 계피가루와 꿀을 넣고 조리는 율란, 부드러운 맛을 극대화 한 밤잼, 듬뿍 밤잼을 넣고 따끈한 우유를 부어 거품을 낸 후 계피가루를 솔솔 뿌린 밤라떼, 흑설탕과 야자당시럽과 진간장과 계피가루를 넣고 졸인 밤조림, 밤과 연근을 넣고 조린 밤연근조림, 삶은밤에 우유와 생크림과 설탕‧소금을 한 꼬집 넣어 만드는 밤밀크잼, 밤 아이스크림 바밤바, 알밤식빵, 밤스프, 밤파이, 밤케익, 알밤묵, 알밤채소전 등 꿀·설탕에 조리거나 가루를 내어 죽·이유식을 만들어 먹고 통조림·술·차 등으로 가공하여 먹으며, 각종 과자와 빵·떡 등의 재료로도 쓰입니다.
먹는 중간 중간 밤 씹는 재미도 있지만, 날 듯 말 듯한 밤향이 더해져 입안에 즐거움이 가득 찹니다.  

우유와 커피와 와인과 그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밤, 특히 생밤은 비타민C가 많아 알코올의 산화를 도와 술안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여행길에서, 긴긴 겨울밤에서, 차례상에서 느끼는 밤맛은 다 다르겠지만 그 본질만은 변함없이 달고 향기롭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배탈이나 설사가 심할 때, 소화가 잘 안될 때에도 밤을 먹었습니다. 밤 속의 당분이 위장기능을 강화해주고 타닌성분이 지사작용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에는 밤으로 만든 명물 디저트가 있답니다. 단밤을 진한 설탕시럽에 조린 뒤, 사각거리는 설탕옷을 입혀 만든 ‘마롱글라세’입니다. 마롱글라세에 쓰이는 밤나무는 특수품종으로, 밤송이에 두 개 내지 세 개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딱 한 개의 밤알이 들어있는 품종입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한다는 세계음식 중의 하나라고 하니, 한 번은 반드시 먹어봐야겠으므로 버킷리스트에 추가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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