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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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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1.14 14:14
  • 호수 12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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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백지천년, 우아한 전통 …한지

12월부터 2월 사이에 닥나무를 채취합니다.
뽕나무과인 닥나무는 이때 섬유질이 가장 많은 상태로, 한지를 만들기에 좋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닥나무에서 섬유질을 분리하기 위해 ‘닥무지’를 합니다. 줄기를 잘라 밀폐된 솥에서 4-5시간 정도 증기로 찌는 작업입니다. 찐 다음 꺼내 껍질을 벗기면 ‘피닥’, 피닥을 그대로 말린 것이 하급지의 원료인 ‘흑피’이며, 흑피를 물에 불려 표피를 긁어 벗긴 것이 ‘백피’로,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의 원료가 되는 것이랍니다.

백피를 물에 삶아 헹구고 햇빛에 말리고 두들기고 티를 고르고 짓이겨, 드디어 물뜸인 종이 뜨기를 합니다.
물 빼기 후 건조판에서 바로 나온 종이는 크게 ‘생지’와 ‘숙지’로 나누어집니다. 생지는 질기기는 하지만 표면이 거칠고 섬유질이 고르지 못해 수분과 물감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여, 물을 품어 밟거나, ‘도침’(다듬잇돌에 다듬어 질기고 부드럽게 표면 가공하는 작업)하여 숙지를 만듭니다.
숙지에 물을 품고 염색이나 표백을 하여, 말리고 다시 적시고 도침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 누런 종이가 햇볕에 하얘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부패하거나 변식되지 않고, 고른 표면은 반질반질 윤기를 띱니다. 

우리나라의 종이제조법은 2세기에서 6세기 사이로 추정됩니다. 7세기 초 삼국시대에는 제지기술이 보편화 된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닥섬유로 만든 종이가 우리종이로 정착된 시기로 볼 수 있답니다.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과 속장경 등 각종서적의 간행으로 인쇄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종이 제조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 종이는 특히 질기고 튼튼하기로 유명해 고려시대에는 ‘고려피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원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물품 가운데에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종이의 품질이 아주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종이 생산 기술은 국가의 중요한 수공업 중 하나로 발전하여, 15세기 초에는 종이 생산 시설인 ‘조지소’를 설치하여 중앙과 지방의 수많은 장인이 다양하고 뛰어난 품질의 한지를 제작하였습니다.
한지는 시대에 따라, 색깔이나 크기, 생산지에 따라 ‘계림지ㆍ고려지ㆍ조선지’ 등 다르게 불렀으며 또한 ‘백지’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색이 희고 곱기 때문에 흰백(白)자를 쓰기도 하지만 일백(百)자를 쓴 백지로도 부릅니다.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닥나무를 베고ㆍ찌고ㆍ삶고ㆍ말리고ㆍ벗기고ㆍ고르고ㆍ두들기고ㆍ섞고ㆍ뜨고…등 아흔아홉 번 손질이 가고, 사용하는 이의 손이 백 번째로 간다는 이유입니다. 
  

가볍고 질긴 한지는 예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귀한 자손이 태어나면 한지로 금줄을 만들어 치고, 정월이면 한지에 물감을 먹여 연을 만듭니다. 창호지나 장판지, 벽지로 바르고 붙였으며 크고 작은 바구니나 항아리를 만들고, 일상의 소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던 옛 어른들의 검소한 마음이었겠지요.

뼈만 앙상한 무릎위에서 삼 껍데기로 실을 만들어 잇던 외할머니 삼실바구니가 생각납니다. 꼬질꼬질 손때가 입혀 들기름을 바른 것보다도 반질거렸습니다.   
비단보다 더 오래가는 사랑을 꿈꾸며 단층장을 만들고 장식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셨을 선조들이, 상상하지 못한 계속된 삶 속에서 괜찮은 마음으로 괜찮은 태도로 생활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한 가닥 한 가닥 종이를 밀고 물감을 스며들게 했을 생각을 합니다. 

따뜻한 감촉과 보기 좋은 무늬로 부드럽고 포근함을 주는 한지로 만든 공예품은, 우아함과 실용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전통의 느낌 그대로인 한지는 은근한 운치가 있어, 선물포장 등 감성을 전하고자 할 때도 효과적이지요, 
몇 년 전 한지박물관에서 체험으로 떠 온 한지를 찾습니다.
닥나무 향기 소소하게 풍기는 고운 한지에 행운 가득 담아 새해인사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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