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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정산면 송학리 오정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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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정산면 송학리 오정옥 씨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9.01.07 14:41
  • 호수 12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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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어 ‘너무 행복’
▲ 60세의 나이에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오정옥 씨.

오늘의 주인공은 오정옥(60·정산면 송학리) 씨다. 그는 하루를 48시간처럼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이다. 농사꾼의 아내로서는 물론 요양보호사,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순을 넘긴 나이, 이처럼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모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어서 즐겁고 행복하다고 전한다. 열정적인 그녀를 만나봤다.

같은 버스 탄 인연이 결혼까지
오씨는 공주에서 태어났으며, 2남 3녀 중 막내로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떠나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6남매 중 둘째인 이길우(61·송학리 이장) 씨를 만나 1년여 연애 끝에 1984년 결혼했다. 이후 5년 정도 더 서울서 직장을 다니다 남편 고향인 정산면 송학리로 이사와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다.
“같은 버스를 탄 것이 인연이 됐어요. 당시 남편은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오던 길이었고, 저는 주말이어서 집에 오던 길이었죠. 그렇게 결혼했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직장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서 귀촌을 한 것이었어요. 물론 귀촌해서도 고생은 많이 했죠.”

귀촌 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도와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물론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논농사, 담배, 고추, 표고버섯 농사까지 최선을 다했단다.
“귀촌 당시 아버님께서도 이장을 맡고 계셨어요. 5년 정도 함께 사시다 돌아가셨죠. 어머니께서는 5년 전에 떠나셨고요. 남편이 부모님 살아계실 때 열심이 배워가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 농기계를 가지고 다니며 이곳저곳 일을 많이 했고, 당시는 물론 지금도 소작으로 농사를 많이 짓고 있고요. 그래서 바쁘죠. 다만, 요즘은 논농사 100마지기, 콩 1만 제곱미터, 고추 6600여 제곱미터 정도 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먹고 힘들어서요.”

요양보호사에 이어 사회복지사 도전
남편과 열심히 농사짓던 오씨는 5년 전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했다. 바로 요양보호사다.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쁘게 움직여야 했죠. 그러다 요양보호사를 시작했어요. 소도 몇 마리 키우는데 농한기에 일하면서 사료 값이라도 벌자는 생각이었죠.”
요양보호사 5년 차인 그는 요즘 세 집을 돌아다니며 한집 당 3시간씩 하루 9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있다. 주말에도 6시간 동안 일한다.
“농사만 지을 때는 힘들면 짜증이 났어요. 하지만 요양보호사를 하면서는 하루 9시간씩 일하다 보면 살림에도 보탬이 되고 어르신들 돌봐드리면서 보람도 느꼈죠. 성심성의껏 열심히 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도 듣고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반면 요양보호사 초창기 그는 속상한 일도 많이 겪었다. 식모나 기사 취급을 받았기 때문.
“요양보호사는 담당 어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일부 가족들이 식모처럼 일을 시키고 기사 취급도 했죠. 많이 속상했어요.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오씨는 지난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사회복지사 도전이었다.
“시누이가 한 요양원 과장으로 일하는데 사회복지사 공부를 적극 권유하더군요. 그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고 지난해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92세 친정어머니께서 생존해 계신데 어머니께서 저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을 항상 가슴아파하셨어요. 당시 과수원을 했는데 그래도 생활이 넉넉지 않았고, 오빠와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저까지 공부시키기 어려워서죠. 그러다 공부한다고 하니 시계도 사주시고 기름 값도 주시면서 좋아하시더군요.”
 
 

▲ 지난 12월 열린 국제문화교류단 청양지부 정기발표회 ‘정산면 송학리 동화재 풍물단’의 공연 모습. 오정옥(사진 가운데) 씨는 2명의 동서와 함께 이 풍물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벽 4시 기상 하루 일과 시작
지난 3월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그는 1년간 정말 바쁘게 보냈다. 일주일에 6일을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목요일 6시 30분부터 3시간 넘게, 또 토요일에는 하루 온종일 대학으로 가 강의를 듣는다. 일정을 보니 일주일 동안 거의 쉬는 시간이 없어 보였다. 특히 그는 8년째 마을 부녀회 총무도 맡아 동분서주 하고 있다. 그래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공부와 요양보호사를 병행하니 정말 바빠요. 사이사이 농사일도 해야 하고요. 새벽 4시면 기상하는데, 그 때 일어나 비가 오면 공부를 하고 날이 맑으면 불을 밝히고 고추를 땁니다. 수업이 있는 날 늦게 운전해 집에 오려면 너무 졸려 제가 제 얼굴을 때리고 꼬집고 그러면서 오죠. 그래도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요. 학업을 마친 후에는 사회복지사로 취업해 열심히 일해 보고 싶어요. 또 여건이 된다면 그룹 홈도 운영해보고 싶고요.”

오씨는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가끔 삶의 이런저런 모습을 시로 풀어 내 발표하기도 한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시가 50여 편에 이를 정도다.
“학생 때 조금씩 쓰다 4년 전 쯤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가을에 콩 수확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 모습을 시로 쓰기 시작했고, 그랬더니 아들이 휴대폰에 메모 작성법을 가르쳐 줘 언제 어디서나 그곳에 차곡차곡 쓰기 시작했죠. 열심히 써 모아놨다가 70, 80세 쯤 시집을 한 번 내 볼까 합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남편의 형과 다섯째 동생이 한 동네에 살고 있고 그래서 세 동서가 오순도순 지내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는 오정옥 씨는 이길우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으며, 두 형제를 모두 출가시키고 자신만의 인생을 열심히 일궈가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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