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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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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멸치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12.17 16:07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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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순한 바닷물고기

오뎅 국물이 좋은 계절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통 옆으로 잉어빵이 고소하게 구어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잉어빵 한 마리를 집으며 “멸치 한 마리 주세요!”라 불리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멸치가 생각납니다.

비록 ‘마리’라고는 불리지 못할지라도 칼슘의 왕, 뼈째 먹는 대표적인 생선 바닷물고기 멸치는, 육수를 비롯하여 볶음‧무침‧조림‧가루‧젓갈‧회‧안주 등으로 수십 종류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입니다. 해양생태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요. 
크기는 작지만 날씬한 몸이며, 검은빛의 청색 등과 은백색의 배가 엎치락뒤치락 연안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은 햇살과 바닷빛과 어울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답니다.

멸치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며 우리나라의 전 연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입니다. 조선 말기에는 워낙 많이 잡혀서, 마른 멸치는 날마다 먹는 반찬으로 여겼으며 즉시 말리지 못하면 썩어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원도 연안에서는 1망의 어획으로 마른멸치 1만여 근을 생산하고, 함경남도의 여도 근처에서는 너무 많이 잡혀 어망이 파손되기도 하였답니다. 동해안에서는 멸치가 방어떼에 쫓겨 몰려올 때면 그 물결이 거대한 파도와 같았답니다. 꾸준히 그 잡히는 양은 증가해 요즘에도 한 번 그물로 억 이상의 멸치를 잡는다고 합니다. 
한말에는 일본으로부터 비료용 마른멸치의 수요가 많아 멸치어업이 큰 성황이었습니다. 보통 잡히는 즉시 죽기 때문에, 잡은 멸치를 그 자리에서 찌기 위한 큰 가마솥을 걸고 다니거나, 찐 멸치를 어항의 창고로 나르는 배 등 여러 척이 함께 움직이는 멸치 어업은 거대한 규모의 선단으로, 멸치선 선주는 지역 최고 부자들이었답니다.
 

멸치는 어린 시절에는 연안 가까운 수면에서 무리를 이루다, 어느 정도 10센티미터정도 자라면 무리를 떠납니다. 가끔 대형멸치들이 해안가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움직이는 속도와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포악하고 심지어 배를 습격하기도 하여, 제주도에는 멸치를 쫓기 위한 ‘멸치 후리기’라는 노래까지 전해집니다.
멸치의 몸이 1미터가 넘게 자라면 해구 근처로 들어가 살기 때문에, 일부의 지질학자들은 지진의 원인으로 대형멸치를 꼽기도 합니다.

똑똑한 멸치는 3미터가 넘으면 진화에 가까운 변화를 보인답니다. 백상어를 능가하여 빠르게 움직이며, 크고 엷어 떨어지기 쉽던 비늘은 갑옷처럼 단단해지고 이빨도 상어와 맞먹는 크기로 촘촘하게 생겨납니다. 1969년 달에 첫 발을 내린 아폴로11호 승무원들은 달에는 천 년 된 멸치 화석이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천문학자들은 멸치가 인간보다 몇 천 년 앞서 달에 착륙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보통 멸치는 1년 반의 세월을 산다 하지만, 한 멸치연구가의 논문에 의하면 멸치의 평균수명은 약 500년에 가깝다고 하였으며, 대부분의 생물학자들도 대체로 멸치는 무한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하기도 하였답니다.  
멸치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던 공상과학영화 ‘베틀쉽’이 몇 년 전에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는 내용으로, 그 외계인이 심해 속에 잠복해 있는 멸치라는 것이었지요.

작은 바닷물고기인줄만 알았던 멸치의 세계가 이렇게 어마어마할 줄은 몰랐습니다. ‘멸치 한 마리’라고 불리기를 소망하는 멸치들이 이 진실인지 모를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대나무그물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잡는 고가의 죽방렴멸치와, 외계인멸치, 한자이름 추어, 부탄에서는 멸치사람이라고 부르겠지요.
그래도 끝내 ‘마리’라고는 불리지 못하는 은빛 파도의 멸치를,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사 온 만 원에 수 마리 노란잉어빵을 먹으며 생각합니다.
뼈가 튼튼해진다는 이유로,
키 큰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반강제로 먹던 바닷물고기 멸치가,
마른 몸에 비해 큰 얼굴 가운데의 옴팡진 눈이,
시린 겨울밤을 째려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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