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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더듬 읽고 쓰다 보니 시인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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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더듬 읽고 쓰다 보니 시인 됐네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8.12.17 15:49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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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교 학생들 ‘황혼에 핀 꿈’ 시집 발간 감동
▲ 청양읍 노인종합복지관 학습장 학생들.

한글교실 할머니 학생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시집이 발간,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황혼에 핀 꿈’이라는 제호의 시집은 ㈔청양군자원봉사센터(이사장 김기준)가 문해교육(한글교육)을 받고 있는 군내 어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시집 만들기’ 사업의 결과물이다.
시집에는 군내 15개 문해교육 학습장 90여 할머니 학생들의 시 120여 편이 수록 돼 있다.
한 집안의 딸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삶의 기쁨과 애환이 담겨있다.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삐뚤빼뚤 써 내려간 시 속에는 긴 세월 힘들었지만 잘 견뎌냈다는 스스로의 위안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 했다. 

▲ 비봉면 장재리 학습장 황춘례 할머니의 ‘간판만 보인다’라는 시다. 그림까지 할머니가 직접 그렸다.

‘어제 호미 잡은 손은/ 깨끗깨끗 밭은 잘 메는데/ 오늘 연필 잡은 손은/ 삐뚤삐뚤 글자를 쓰네/ 호미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데/ 연필은 내 마음을 몰라주네/ 내가 호미를 좋아한 만큼/ 열심히 열심히 연필을 좋아하면/ 언젠가는 연필도 나를 좋아하여/ 깨끗하게 이쁘게 쓸 수 있겠지’<‘삐뚤한 글씨·홍성희>

‘아들이 학교 갔다 오면/ 책을 들고 달려온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엄마 지금 바빠서 그래/ 저녁에 아빠 보고 가르쳐 달라고 해’<‘내 이름은 부엌 순이’·황양순>

▲ 남양면 매곡리 학습장 이부자 할머니의 ‘공부가 꿈’이라는 시다. 할머니는 이번에 3편의 시를 썼고, 아쉽게 이 시는 실리지 않았다.

‘내가 까막눈이라는 것/ 누가 알까봐/ 핑계 대며 살아왔다/ 면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는 데 이름을 쓰라 해서/ 눈이 잘 안보여 쓸 수 없다 핑계하며/ 대신 써 달라 했는데/ 통장에 있는 돈을 찾으려/ 농협에 가서/ 비밀번호 적으라 해도/ 팔 아프다 핑계대고 대신 써 달라 했는데/ 이젠 내가 쓸 수 있다/ 얼굴 빨개져 더듬거리고 눈치 보며/ 핑계하지 않아도/ 이젠 내가 쓸 수 있다/ 나도야 글을 읽고 쓸 수 있다’<‘핑계’·이부자>

‘내 나이 구십에 공부를 한다/ 이제껏 살아온 날/ 행복한 일 궂은일도 있었건만/ 이제는 하늘나라/ 여행 갈 일만 남았구나/ 남은 일생 편안히 있다/ 알아서 갈테니/ 재촉하지 말라는 글귀가/ 생각나는 구나/ 이제는 남은 일생 공부도 하고/ 이야기꽃도 피우고/ 알차게 보내야겠다’<‘내 나이 구십·조성순>

‘동네에서 동네로 시집을 가니/ 날 따르던 어린동생/ 자꾸만 찾아 오네/ 삽작에 얼른대는/ 막둥이 동생을/ 시어른들 어려워/ 들어오라 못했던/ 그 옛날 추억들이/ 근래 일인 듯/ 자꾸만 떠오르는/ 어릴 적 내 동생/ 이제는 동생도 나도/ 머리 허연 황혼길/ 동생아 그 때 일/ 너도 생각나니?’<‘내 동생’·신희섭>
이 시들은 ‘황혼에 핀 꿈’에 실린 작품 중 일부다.

▲ ‘황혼에 핀 꿈’ 시집.

자원봉사센터, 농촌재능나눔 선정 진행
청양군은 올해 군내 10개 읍·면 68개소 학습장에서 문해교육을 실시해 55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에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문해교육생 어른들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시로 완성, 길이 간직할 책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이번 ‘시집 만들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자원개발원이 주관하는 ‘2018년도 농촌재능나눔 일반단체 활동지원사업-주민교육 및 문화증진분야’에 ‘너와 나의 꿈’이라는 사업명으로 응모・선정을 받았으며, 1000만 원을 확보해 이번 사업을 진행했다. 
또 청양군문해교육협의회(회장 김계하・한글교육)·청양문학회(회장 박정현·글쓰기 지도)·새샘상담연구회(회장 정묘섭·레크리에이션 요가교실 운영) 회원들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한편 자원봉사센터가 진행한 ‘어르신 시집 발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15년 ‘나도 한 번 활짝 피어볼까’라는 제목이었다. 당시 자원봉사센터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주관하는 ‘2015 농촌재능나눔 공모사업’에 청양군과 공동으로 응모·선정돼 시집을 발간했다.
첫 번째 시집에는 22개 마을 81명의 한글학교 교육생들의 글 116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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