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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정산우체국 신권오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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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정산우체국 신권오 집배원
  • 김홍영 기자
  • 승인 2018.11.19 13:46
  • 호수 1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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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오토바이 타고 사랑 전해요
▲ 정산우체국 신권오 집배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장평 지역 배달 업무를 수행한다.

올 해 서른여덟의 그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길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인사 잘하는 총각’, ‘항상 웃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향하는 이는 정산우체국 신권오 집배원이다.

제 시간 안에 배달 완료 업무
2014년 가을. 정산우체국 집배원이 된 이후로 그의 하루 일과는 변함이 없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으면 우체국을 나선다. 장평우체국과 미당·화산리의 정해진 곳에 택배를 옮겨 놓는 것이 첫 번째 업무다.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와 그날 배달할 우편물을 오토바이에 싣는다.
권오 씨의 담당 구역은 장평 중추리-낙지리-화산리-죽림리-지천리 코스다. 칠갑산을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넘나들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의 대답은 의외다.
“여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요. 다른 곳으로 관광 갈 필요가 없죠. 벚꽃이 필 때나 가을 단풍 들 때의 풍경이 제일 멋있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도림리에서 내초리로 내려올 때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보면 하루의 피곤함이 싹 가십니다.”

즐겁게 일하는 긍정 마인드의 권오 씨지만 어려움은 있다. 제 시간 안에 그날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 그 때가 오후 4시 경. 누구나 한번쯤은 우편물이 언제 오나 기다린 적이 있을 터, 그도 기다리는 이가 있으니 시간에 맞춰 배달을 하려고 한다. 월말이면 시간에 더 쫓긴다. 각종 고지서 우편물이 월초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아져 오토바이 배달상자가 꽉 찬다.
“배달물이 많을 때는 옆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안보일 정도로 정신이 없어요.”
권오 씨가 우편물 배달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많이 살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에 “제가요? 아녀요, 마음만 있지 바빠서 못해요”라며 웃는다.

배달 업무 중 생명도 구했다?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이 많이 사는데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건강하냐고 안부를 묻는 정도라고 겸손해 한다. 동네 입구에서 무거운 장보짐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그럼 우편물과 함께 그것을 집까지 옮겨준다. 기동력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일이지 않느냐 여기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쑥스러워 한다. 그래도 배달량이 많지 않은 날은 조금 여유 있게 주변이 보인단다.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 있어요. 그럴 때 오토바이 세워 다시 돌아가죠. 하하~.”
그리고 무슨 사건이 떠올랐는지 미소를 지으며 실타래 풀듯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한번은 전동차를 타고 가다 밭으로 전복돼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구해 드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쌩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쳤는데 넘어진 전동차 밑에 사람이 깔려 있는 듯한 모습이 머릿속에 뱅뱅 돌았다. 결국 오토바이를 돌려가서 꺼내 드렸다.

지난여름 하우스에서 일하다 쓰러진 분향리 주민을 구한 사람도 권오 씨다. 폭염에 탈수 증세를 보여 물을 먹이고, 구급대가 올 때까지 응급조치를 취했다. 
집주인이 병원에 입원한 사이 그 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밥을 주는 이가 없어 권오 씨는 사료를 사다 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냐는 그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심성을 지녔다.
‘이웃들에게 산타 같은 존재네요’ 하니 ‘생명을 구하는 일도 하긴 했네요’ 답한다. 왜 이런 일이 유독 권오 씨 눈에만 띄는 걸까?
“매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민을 모두 알게 돼요. 친척 아저씨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아는 분들이니까 눈에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죠.”

▲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다.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배달 소명
선배 집배원들은 눈이 어두운 어른들에게 편지도 읽어주고, 답장도 써 줬다고 말하곤 한다.
“이제 편지 읽어 달라, 답장 써달라는 사람은 없어요. 엽서 정도가 손으로 쓴 우편물이고, 하루 한통 있을 정도입니다. 이젠 바깥출입이 어려운 어른들의 고지서 대납 정도입니다.”
배달을 끝내고 우체국에 돌아오면 다음날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한다. ‘집배원 돼서 제일 어려운 점이요? 당연히 집 찾는 것이지요’라고 말하는 그도 어려움을 겪은 때가 있었다.
“이름과 번지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주민 명부에서 일일이 확인해야하죠. 매번 그렇게 하려니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장평 화산리가 고향인 그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고, 프로그래머로서 회사를 다녔다.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올 때는 농사를 지을 요량이었다. 전직 프로그래머 경력이 집배 업무에 유용하게 쓰일 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초보 집배원, 매일 집 찾는 일로 야근을 하다 보니 배달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다. 장평면 배달 지역 전세대의 이름과 주소를 일일이 입력하는 고생 끝에 이름과 번지수 중 어느 한 가지 정보만 입력해도 정보가 뜨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우편물 분류를 쉽게 할 수 있다. 이름만 이야기하면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배달 동선에 따라 집들이 모두 머릿속에 그려지는 5년차 집배원이 됐다.
그는 “집배원으로서의 소명은 오배달 없는 정확한 배달에 ‘신속하게’가 더해진다”고 말한다. 오늘도 장평 주민들은 들판에서 혹은 동구나무 밑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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