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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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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벌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11.19 11:01
  • 호수 1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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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 벌꿀방에서 꽃가루방으로

억새는 어디서나 예쁩니다. 논길에서나 냇가에서나, 혼자 있으나 무리지어 있으나, 바람에 흔들리거나 가만히 있어도 참으로 예쁩니다. 구기자가 빨갛게 익고, 나뭇잎이 산딸기보다 붉게 물들고, 고들빼기 넌출거리는 잎도 곱게 바랜 사이사이로 눈부시게 억새가 핀 들길을 걷습니다. 
대부분 지고 만 들꽃 사이에 국화가 남아있습니다. 몇 마리 벌들이 조그만 국화송이에 머리를 푹 파묻은 채 왱왱거립니다. 마지막 향기를 쥐어짜 내뿜고 있는 스러진 꽃은 꿀을 따는 꿀벌들의 고달픔이 전달된 듯 노랗고 자잘한 송이들이 출렁 출렁 댑니다. 
 
꿀을 제공하고 화분 매개 등 인간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벌은, 곤충 가운데 가장 큰 무리이자 가장 바쁜 생물로써 군집을 이루어 생활합니다. 벌집 속의 많은 벌들은 생존하기 위해 협력 체제를 갖추고, 서로 의지하며 도와 효율적이고 원활한 공동 작업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한 개의 벌집에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약간의 수벌과 많은 수의 일벌이 살고 있으며, 수 마리부터 8만 마리가 존재하는 큰 집단을 만들기도 합니다.
‘한 무리의 벌집에서 가장 중요한 벌이 여왕벌’이란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정하였듯이 여왕벌은 여러모로 대단합니다. 똑 같이 태어나서 단지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일벌의 입에서 나오는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며, 2년에서 7년 동안 살아있는 내내 하루에 2천 여 개의 알을 낳기 위해 존재합니다.

미수정란에서 생기는 수벌은 게으름뱅이로 일벌보다 몸집이 크며, 짙은 검은색의 눈으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입니다. 혀가 짧아 단물을 빨지 못하므로 일벌이 먹여주지 못하면 굶어 죽습니다. 오로지 여왕벌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슬픈 벌이랍니다.

작은 생물, 달콤한 꿀과 꽃가루를 만드는 부지런하고 영특하며 벌집에서 없어서는 절대 안 될 존재, 일벌입니다.
여름에 날개를 달고 태어나는 벌은 6주 남짓 사는 동안 여러 단계에 걸쳐 벌집 안의 모든 일을 처리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꿀이 채워진 방을 청소하고 단백질로 채우는가 하면, 수벌과 여왕벌과 애벌레를 돌봅니다.
다른 일벌로부터 꿀을 받아 저장하고, 방마다 꽃가루를 채워 벌집을 짓습니다. 더울 때는 부채질을 하고, 꿀을 숙성시키며, 침입자를 대비하여 문 앞을 지키는 파수꾼 벌이 되기도 합니다. 말벌 등 적의 침입에 집단 대응을 하며, 여왕벌의 냄새로 알 수 있는 식구들을 지킵니다. 독주머니에서 나온 독이 복부를 통한 침으로 적에게 독을 쏘아 치명상을 입히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많은 일벌들이 죽게 됩니다. 보통 벌에 쏘였다 하면 이 파수꾼의 꿀벌에 쏘인 것이지요.
 

마지막 변신으로 꿀벌이 되어 꽃을 찾아다닙니다. 꽃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도록 암술에 옮겨주면서 뒷다리에 듬뿍 꿀을 모아옵니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꿀벌은, 꽃꿀을 수집하기 위해 미리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깁니다. 향기를 기억하여 꽃을 가리는 영리함과, 한 번 다녀간 꽃에는 다른 벌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표시를 해 주는 전략가로서의 배려도 합니다.
그 중 정탐꾼 벌은 꿀꽃을 발견하면 집으로 돌아와 춤을 춥니다. 빙글빙글 춤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다른 일벌들에게 먹이가 있는 곳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지요. 가까운 곳이라면 원형으로, 100미터 이상인 곳이라면 8자 모양으로 돌며 춤을 추는 것이랍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꿀벌은, 심지어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려도 빗속을 뚫고 다니며 맡은바 소임을 다 합니다.
죽을 때도 꿀벌은 벌집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 집을 빠져 나갑니다. 집 주변에서 죽게 되면 천적들의 침입에 노출되기 때문이랍니다. 멀리 멀리 집이 안 보이는 곳에서 풀잎 위나 땅바닥에 마치 살아 있는 모습으로 죽으며, 벌집 주변에 죽은 벌이 있으면 꿀벌들이 물어다 버린답니다.   

길옆이나 산속에서 드문드문 노란 벌집을 봅니다. 벌들이 노란색을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물체의 모양이나 상태에 둔한 꿀벌은 자외선과 청색과 청록색과 노란색만 구분하기 때문이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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