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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통요연 장유빈
앞치마가 가장 좋습니다!
[1262호] 2018년 09월 03일 (월) 11:17:42 청양신문 기자 webmaster@cynews.co.kr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  을/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들장미소녀 캔디

“온성도 마찬가집니다. 똑 같습니다. 거기도 얼마나 더운 줄 몰라요.”
우리나라 지도 맨 꼭대기,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장유빈씨를 만난 날은 정말 더웠습니다. 
“습네다, 종간나, 이런 말은 북쪽에서도 안 쓰는 말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쓰던 말로, 지금은 젊은이들도 안 쓰는데 남한 사람들이 사용하니…, 그런 말을 어떻게 북쪽에서 사용하는 걸로 아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저녁식사가 늦었습니다. 북에서 함께 온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넓은 접시 위에 콩나물과 붉은 양념에 덮인 생선이 놓여 있습니다. 어북쟁반이냐 물었습니다.
“아니요. 명태찜입니다. 어북쟁반은 암소 배고기 수육입니다.”

좋은 세상? 좋은 세상!
남한에 온 지 10년째, 불편했거나 그리운 음식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어렵지는 않았어요. 해산물, 코 딱 지르는 홍어를 정말 좋아해요. 명태대가리순대, 심떡(증편), 녹말국수도 좋아합니다. 재료는 이곳에도 다 있는데요 뭘, 밀가루 만두피에다 가을에 소금물로 절인 배추김치와 부추를 송송 썰어 넣은 만두가 가끔 생각납니다.”
 
남한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 자녀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지도 궁금하였습니다.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나만 잘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닌가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꼭 이루게 됩니다. 루마니아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에도 나가봤고, 북한 요리로 대한민국전통음식 제1호 명인지정도 받았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지만, 저는 힘들고 지친 적 없습니다. 제가 가장이라도 좋고…, 신세타령 해 본 적도 없고, 스트레스 받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럴 수 있겠다 헤쳐 나가면 되지, 팔자니까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딸은 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본인은 장사하고 싶답니다. 15살 아들한테는 숙제 했냐 물어보지도 않아요.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웁니다. 북한말로 ‘자력갱생’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만 합니다. 공부 하는 걸 보면 남한이 나은 것 같고, 아이들 인성교육은 북한이 나은 것 같아요.”

혹시, 북한에서 왔다는 편견을 받으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이겨내죠. 아르바이트 할 때도 사람들이 중국산이냐 어디산이냐 물으면 당당하게 북한산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손님들한테 한 마디도 안 져요.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 질 이유가 없잖아요.”

꿈과 위로와 영혼의 앞치마
“앞치마가 제일 좋습니다. 앞치마만 두르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죠. 통일요리연구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북한요리를 알려줄 때 유쾌하고 희열을 느껴요. 놀러 가도 주방에 제일 먼저 들어가요. 주방에만 들어가면 눈이 더 커지고 레이저가 팍팍 나와요.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방이 활력소네요?
“그럼요. 즐거워서 하고, 해야 되니 하고, 재밌으니까 하고, 설거지든 야채를 다듬든 리듬을 타면서 하니 힘 안 듭니다. 죽을 때까지 해야죠. 다시 태어나도 당연히 요리를 할 겁니다. 설거지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데요.”

통일음식이라함은 북한음식과 남한음식을 합한 것이네요?
“그렇죠. 남한사람에게는 북한음식을 알려주고, 북한사람에게는 남한음식을 알려 주는 거죠. 북한요리를 찾아내서 통일 되는 그 날까지 연구를 해야죠. 북한의 떡 종류만 해도 100여 개가 넘습니다. 제가 먹던 기억을 되살려 레시피를 만들어야죠. 글쎄 모르겠어요. 나는 당연한데, 남들은 저보고 정말 열심히 산다고 하네요. 또 이렇게 살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봉사도 요리도 내 몸이 원하는 것
직장인들의 주 52시간제를 추구하는 시점에서, 하루가 52시간이면 좋을 사람, 장유빈씨의 눈과 입에서 에너지가 팍팍 나옵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북에서 온 사람들의 모임인 남북주민화합봉사센터까지 조직해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음식을 만들어 요양원을 방문하고 어르신들의 손과 발을 씻어 드립니다.

“북한에서도 많이 했습니다. 친정엄마가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집이 없거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음식을 많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강래쌀(싸래기쌀)이나 국수 같은 것도요.”
“본래 노인을 좋아해요. 친할머니가 쓰러지셨는데, 어머니 비위가 약하셔서 제가 다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았어요. 그런 생활이 몸에 배 봉사라는 개념 없이 자연스럽게 행하던 것을, 새터민 몇 명이 시간과 마음을 맞추어 주기적으로 할 따름입니다. 여건만 되면 한 달에 한 번은 북한음식 강의도 재능기부 할 겁니다.” 

청양에 거주하는 새터민 중에서는 장유빈씨가 방송에도 나가고, 국제적인 요리대회에도 자주 나가니 가장 유명하신 분이겠네요?
“저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새터민 3만5천 명 중 요리로는 제가 최고잖아요? 출연료는 아주 적지만, 돈보다는 저를 알려야 되기 때문에 홍보 차원으로 나가는 겁니다. 제가 통일음식체험관을 하려면 유명해져야 되거든요.”    
남한생활 중 사기를 당해서 많이 힘들었다는 장유빈씨는 지금도 그 돈을 갚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겐 통일과 안보 강의를 하고, 이번 남북회담 때 차려진 북한의 음식과 떡의 유래 등을 가르칩니다. 중학생한테는 북한요리를 소개하고 함께 만듭니다. 하나원(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 지원기관)에 가서 성공스토리 강의도 하며, 즐거우나 슬프나 요리를 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그토록 원하는 통일음식체험관을 갖게 되면 본인만을 위해서 하고 싶은 것, 요리하는 일 말고 다른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기타와 여러 악기가 있지만 할 시간은 없고, 나중에 드럼이나 배워 볼까요? 격한 운동, 텔레비전에서 본 것인데, 진흙땅에서도 마대를 끌고 다니며 벽도 막 타고 넘어 다니는, 크로스핏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3년째, 요리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장유빈씨는 통일이 되면, 차 끌고 부모님 산소에 가장 먼저 갈 것입니다. 고향에 가서 어릴 적 동무들을 만날 것입니다.
자신감과 에너지가 펑펑 나오게 하는 소울푸드 앞치마, 그 앞치마가 지금의 장유빈씨를 만들었고, 또 그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분홍빛 앞치마에서 장유빈씨의 꿈을 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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