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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장례지도사 박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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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장례지도사 박승준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8.13 14:31
  • 호수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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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똑 같은 건데, 자는 모습이죠. 그냥 주무시는 모습 그대롭니다.”
팔 다리를 주물러 가지런히 하고, 몸을 닦아주고, 상처 난 곳이 있으면 꿰매줍니다. 바지부터 도포까지 옷을 입혀주고, 눈썹을 그리고 연지를 찍고 얼굴이 환하도록 분을 바릅니다.
얼마나 편안해 보이나 다시 한 번 훑어봅니다. 그동안 잘 사셨다고,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근심 걱정 잊으시고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합니다.
생전에 눈인사 한 번 안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긴 시간 살뜰하게 보살피고 나면 평소알고 지내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편안한 길을 위한 아름다운 손길 
“아무 생각 안 합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2시간 반, 인간이 지녔던 가치와 존엄성을 내려놓은 영혼이 떠난 육신, 시신을 염습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까 궁금하였습니다. 살아생전 혹시나 마음고생이나 몸 고생하신 분들은 표가 나는지, 꼭 맷베를 해야 하는지, 장기 기증을 해도 염습은 하는지, 시신은 정말 주름살이 없는지 등등. 
 
“무서웠으면 지금까지 못 했겠죠. 전혀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보조로 일 할 때, 은사님이 잘 가르쳐 주셨죠. 다른 사람들한테는 못한다고 꾸지람을 하셨다는데, 나한테는 지청구 한 번 안 하셨어요. 가끔 은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장례지도사의 말을 빌려, ‘예전에는 이 일을 한다하면 악수도 안 하려 하였다. 그 손으로 어떻게 밥을 짓고 반찬을 무치느냐며 괄시를 받았다’는데, 본인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느냐 물었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을 만지느냐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정도로 거부 반응은 없었어요. 사실, 요즘에야 장례지도사나 장례코디네이터라 부르지 예전에는 염쟁이라 불렀지요. 장의사는 한 때 기피 작업이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는 그런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본인 말처럼 그 당시 탐탁찮은 직업이었는데, 처음 시작 할 때 가족이나 누구 반대한 사람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내 직업이니, 내가 알아서 하는 거죠. 옛날에는 본래 가족이 염습을 했다고 합니다. 본래 가족이 해야 되는데, 그런 어려운 일을 가족들이 안 하니 직업으로까지 생긴 거죠.” 
“조선시대 양반가문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염하는 법을 가르쳤지요. 이재가 쓴 「사례편람」에서도 염습은 가족이 하되,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하라고 적혀 있지만, 굳이 여자를 여자가 해야 된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염습은 망자와 산자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소통방법입니다.”
‘장례지도사의 손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길’이라는 영화 대사가 생각납니다.

죽음이 있기에 소중한 삶!
13년째, 긴 시간 동안 장례지도사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겠네요?
“본래 가족이 처음부터 염습을 하는 것을 보는 경우가 없는데, 그런 집이 있었어요. 망인이 염쟁이였는데 가족들이 염에 대하여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자식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염습인지 꼭 본인을 염습할 때 참관하라 했답니다. 우리 아버님이 정말 어려운 일을 하셨구나 하며 많이 울더라고요.”
“어머니 생일 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들어온 경우도 있었지요. 장기가 다 파열되어 꿰매서 염습을 하는데, 어찌나 안 됐던지…, 몸 상태가 많이 안 좋게 들어와 염을 못 한 경우도 있었고, 어느 가족은 부모 염을 하지 말라고 때린 사람도 있었어요.”
때려요? 왜요? 슬퍼서요?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어린아이 같으면 엄마 몸을 묶지 말라고 땡깡부리는 거겠지만, 다 큰 어른이….” 
“화장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고, 또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예쁘게 화장 해 달라는 사람도 있어요. 고생 많이 하셨다고 비싼 수의 입혀드리는 분들도 있고, 또 평소 입던 옷 입고 가시겠다는 사람도 있고.”
꼭 수의를 입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평소 입던 옷을 입어도 된다고요?    
  
누군가는 죽음의 순간에 인생을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어루만지고 죽음을 가까이 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고 싶죠. 쉬는 날에는 국화를 키우고, 가끔은 고스톱도 칩니다. 사는데 무슨 큰 목적 있나요. 하루 지나면, 그냥 갔나보다 그런 것. 행복하게 죽으려면… 누구랑 애기하다 죽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죽고 싶죠.”
그럼, 같이 얘기 하던 사람은 얼마나 놀라겠는지 그 생각은 안 하고요?   
    
2인 1조가 되어 하는 염습,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요?
“기왕에 이 길로 들어섰으니, 네 부모님한테 해 드리는 것만큼만 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신의 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삶의 완성’, ‘겨울옷을 봄옷으로 갈아입는 것’, ‘은하수로 춤추러 가는 것’ 등 많은 문장과 단어로 죽음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저 세상으로 가는 길, 그들이 있어 편안한 자세와 편안한 얼굴로 이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꿈 많은 가슴, 후회 많은 세월!
장례지도사, 미래의 여러 직업 중에 취업이 잘 되는 인기직업군입니다.
2018년 을지대학교 4년제 장례지도학과의 경쟁비율은 6.9:1이었으며, 40명 정원에 여학생이 25명입니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2016년~2030년)의 인력수요 전망에서, 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장례업 같은 특수 분야 수요는 더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인공지능시대에도 사라질 수 없는 전문직종이지만, 또 혹시 로봇 장례지도사가 나올지는 모를 일입니다.   

무채색, ‘인생’ 노래를 좋아한다는 박승준 씨의 얘기를 들으며 무채색이 떠올랐습니다. 처음부터 무채색인 것과 서서히 무채색이 되는 것의 차이점을 생각합니다.
염쟁이에서 인기직업으로 변한 장례지도사, 13년 전으로 돌아가도 이 일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냥 웃습니다. 
해 진 하늘빛이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저런 색, 저렇게 예쁜 비단옷 수의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건 아니겠지만, 이 가슴엔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 뒤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  수 없는 이 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이나 잘 해  봐야지’-「인생」부분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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