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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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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냉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8.06 15:18
  • 호수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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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수무레하고 수수하고 슴슴한…냉면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별별 것 보았네/맛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냉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좋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식당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었습니다. 옥류관 서울1호점의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분단 이전 평양에서 즐겨 먹던 냉면재료에 분단 이후에 유행한 고기국물을 더했다는 평화냉면과 통일냉면이 있다고 합니다. 평안남도 출신의 어르신은 “실제 고향의 냉면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냉면으로 민족이 하나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평화냉면 드신 소감을 말합니다. 
옥류관냉면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주방장이 만든 음식이지만,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주방장처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든 것이겠지요.  
냉면을 처음 먹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따끈한 냉면육수를 마시며, 무와 오이와 홍어와 미나리와 배를 섞어 빨갛게 무친 고명이 가는 국수 위에 올려 나온 회냉면을 먹고 나서는 혓바닥이 매워 침을 질질 흘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한 육수와 함께 먹는 매운맛에 익숙해져서 기회만 되면 냉면, 그것도 겨자즙과 식초를 듬뿍 뿌린 회냉면을 사리까지 추가하며 먹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눈 많이 내린 창경궁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평양냉면집에 들렸습니다. 달고 맵고 자극적인 회냉면에 비하면 밍밍하고 심심하였지만, 한 번 두 번 먹다보니 그 담백함과 시원함에 점차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평양지방의 향토음식인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를 익반죽한 후 틀에 눌려 만든 국수를, 바로 삶아 찬 국물에 말아먹는 음식입니다. 예전에는 꿩을 삶은 국물을 이용했으나 지금은 쇠고기와 사골을 사용합니다. 냉면국물은 육수와 동치미국물을 반반 섞어 만듭니다. 평안도 지역의 사람들은 영하20℃ 내외의 강추위 속에서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몸을 녹여가며, 이가 시린 찬 냉면을 먹으며 이냉치냉의 묘미를 즐겼답니다.
냉면이 처음으로 기록 된 「동국세시기」에서도,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 꼽으며 평안도 것이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냉면의 본고장은 평양으로, 평양 지방에서 즐기던 냉면은 6·25사변 이후 전국에 퍼지게 되어 사계절 즐겨 먹는 음식이 된 것이지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시인의 글을 읽습니다. 시인 또한 국수를 좋아했는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글에서 메밀냄새가 납니다.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 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북신-서행시초2> 부분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가곡 ‘냉면’도 생각납니다.

냉면맛도 모르면서 선생님이 한 소절씩 선창을 하면 따라 부르며, 냉면을 즐겼습니다.  '아이구나~ 맛 좋다! 냉~면 냉~면.'
옛날 평안도 지역의 겨울시식이었던 냉면이 지금은 여름철에 더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몸의 열기와 습기를 배출시키는 메밀의 성분과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육수 때문입니다. 다소 몸이 찬 사람을 위해, 차가운 기운을 줄여주는 무와 자칫 부족해지기 쉬운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달걀과 쇠고기 고명까지도 올린 냉면은 더위를 잊게 합니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음식으로 더 유명해진 냉면, 늘 평화와 통일과 함께 했던  냉면,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평양의 옥류관냉면은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뽑힌답니다.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소고기와 닭고기, 꿩고기로 깊은 맛을 낸 담백한 육수가 일품이라 합니다.
평양 창전동 대동강의 옥류교 옆에 지어졌다하여 이름 붙여진 옥류관에서, 푸른 대동강물을 보면서, 석양이 비치는 붉은 대동강물을 보면서, 슴슴한 냉면 국물을 고이 받들어 마시고 싶어집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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