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3:35 (목)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일어 섬
상태바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일어 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7.24 16:02
  • 호수 1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일어 섬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터널을 만든,
육지와의 연륙교 공사를 반대하며 끝내 섬으로 남은,
옥색과 청색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들이 우리를 부릅니다. 
 
어덕마다 파랗게 보이는 것이 방풍나물과 칡덩굴입니다. 칡덩굴 넘어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고요합니다. 군데군데 붉은 칡꽃이 남아 길 가는 이들을 향기롭게 합니다.
한여름 땡볕과 터널이 반복됩니다.
꽃이 진 자리에 단단하고 붉은 열매를 키운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가늘고 검은빛의 대나무 터널을 만납니다. 다시 강한 햇살이 내리쬠에도 불구하고 비렁길은 청빛 바다가 불쑥불쑥 내밀어서 더 걷게 됩니다.

벼랑을 뜻하는 여수지방의 ‘비렁’길을 걷습니다.
뒤돌아보면 까마득한 절벽 위를 걸어 왔다는 놀람보다, 산과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모습보다, 푸르고 짙고 맑은 물빛에 더 크게 입이 벌어집니다.
도로가 생기기 전에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미역과 물을 나르며, 파란 바다에 앉는 해무와 석양을 보면서 이 길을 걸었을 옛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갯기름나물,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잘 자라며 풍을 예방한다는 방풍나물이 제 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푸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나물로 이용하고 아이들 머리가 좋아진다 하여 태교음식에 쓰이기도 하지만, 섬에서의 방풍나물은 약용이나 민간요법에 뛰어난 효과보다는, 경제적으로 많은 소득원이 됩니다. 고구마를 심었던 섬의 땅이 방풍나물로 바꿔진 이유입니다.  
손바닥으로 푸른 방풍나물을 쓸어봅니다. 쌉싸름한 냄새가 물씬 납니다.

오목하게 들어 선 해안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보기 좋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의 관을 짜는데 사용했다는 황장목은 아닌가 올려보고 쓰다듬어 봅니다.
 이 땡볕의 시절 또한 동백의 시절 못지않게 섬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합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다와 나무, 절벽은 섬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드문드문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닿을 듯한 섬과 섬을 내려다봅니다. 섬에 앉아 오고가는 배를 보며, 배가 가르는 물살을 따라갑니다. 동그란 부표들이 출렁거리는 바다, 눈송이를 사르르 받아먹을 바다, 빗방울을 삼킬 바다를 봅니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의 날씨입니다.
기다리다 보면 이 폭염도 끈적임도 선들선들 가겠지요. 그러하기 전에 시원하고 더불어 가슴 뻥 뚫리는 섬 하나, 그런 새로운 섬 하나 갖고 싶습니다.

자라처럼 생겼다 하여 금오도, 바가지처럼 생겼다하여 박지도, 동백이 많은 지심도, 방아섬이 있는 관매도, 홍어의 섬 흑산도, 애절한 느티나무의 섬 개도, 영화 실미도로 유명한 무의도, 식당이 없다는 수우도, 바지락섬 삽시도, 통영 앞바다의 연화열도의 섬 욕지도와 미륵도와 반야도,…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육지를 보며 들어왔던 섬에서, 다시 멀어지는 섬을 봅니다. 기다리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처럼 말없이 묵묵히 마냥 받아줄 것만 같은 섬입니다.
스스로 용서 받은 날이나, 용서 해준 날이나, 쓸쓸한 날이나 기쁜 날이나 섬을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날에도 섬으로 갔다는 섬여행자, 그는 말합니다.
 “그 섬이 주저앉은 당신에게 새로운 ‘일어 섬’이 되어줄 것입니다.” 라고요.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