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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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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비꽃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7.16 14:17
  • 호수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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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낱씩 떨어지는 빗방울

비가 온다 소록소록/실비가 온다/하얀 은실 사륵사륵/풀면서 온다/파아란 연못에/고이 내려서/동그란 무늬의/수를 놓는다-이슬기<비>

논둑길을 걷자니 햇볕이 따가워 눈뜨기가 불편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후끈했던 열기가 금방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여름소나기입니다. 다시, 더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고 차 유리창에, 푸른 깻잎 위에 물방울이 앉아 있습니다.

마을회관 모퉁이 물받이 통을 타고 콸콸 흘러나오는 낙숫물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처마 끝이나 지붕에서부터 내려오는 낙수를 받아 쓰기 위해 그 밑에는 큰 대야나 양동이가 놓여있었습니다. 비누가 잘 풀리고 미끈미끈하며 사용하기 좋은 단물이라 배워, 빗물을 받아 놓고는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 물로 씻고 나면 손등이며 머릿결이 미끈거렸습니다.
걸레를 빨기 위해 학교 교실 처마 밑에 받쳐놓아 물이 든 양동이 바닥에는, 옅은 보라색을 띤 지렁이가 퉁퉁 불은채로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입니다.
뙤약볕과 비, 전형적인 장마철이기도 합니다.
소록소록 사륵사륵 실비가 내리고, 하늘하늘 꽃비도 내리며, 천둥 번개와 함께 우르릉 쾅쾅 장대비도 내립니다. 
비 오는 날의 즐거움은 내리는 비의 종류만큼이나 다르게 들리는 빗소리입니다. 빗방울이 공기와 만나서 내는 소리, 무엇과든 부딪쳐서 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콩 볶듯 양철지붕 두드리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낙수소리, 나뭇잎에 떨어지는 상큼한 소리, 퐁퐁 양동이에 떨어지는 소리, 흐르는 냇물에 잠겨버린 소리,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소리 등 여러 소리가 있지만, 아마도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장 정감을 자아내는 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빗소리는 아무리 클지라도 시끄럽거나 성가시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옛 생각이 나게 하며, 감성적으로 변하게도 합니다.

도로 위에, 꽃잎 위에 동그란 무늬를 만들며 빗줄기가 떨어집니다.
흙탕물을 튕기며 흙냄새를 일으키지도 않으며, 질퍽하니 누런 흙을 신발에 묻히지도 않습니다. 때때로, 비가 개고 나면 군데군데 묻혀있던 노란 흙발자국과 휑하니 길바닥에 난 발자국 자리가 떠오릅니다.   
처마 밑에 서서 낙수에 손을 내밀어 맞고 있으면 손등에 사마귀가 생긴다고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를 맞으면 옷이 젖어 구적거리기 때문이었지만, 그때 생각이 나 손을 내밀어봅니다. 부드러운 비가 손등으로 내려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을 ‘비꽃’이라 합니다.
바람이나 병으로 채 익기도 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 도사리, 누군가에게는 반짝이는 보석이 될 수 있도록 도사리를 줍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장승욱은 바람에 날리듯이 떨어지는 한 두 방울의 빗방울을 보면 “아, 비꽃이 피는구나!” 라고 말 멋을 부려보라 한 생각이 퍼뜩 납니다.
이미 비꽃이 사라지고 소나기도 한바탕 지나가고 난 뒤에 말입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하지만, 때에 따른 적절한 표현 또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비와 함께 한 며칠이 지나자, 눅눅하니 습기가 많은 날이 왔습니다.
땡볕으로 지글지글 열기가 오르는 뜨겁고 후텁지근한, 불타는 여름입니다. 막바지 장맛비가 지나가고 있으나, 아직 태풍이 남아있다는 늦은 밤의 일기예보를 듣습니다.
호우주의보가 폭염주의보로 바뀌었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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