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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사과나무와 … 바로 김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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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사과나무와 … 바로 김기상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8.04.16 15:51
  • 호수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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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좋은 세상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세상입니다.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 문제죠.”
나 스스로 성숙되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말하는 바로 김기상시인의 늘 담담해 보이는 마음속은 어떨까 궁금하였습니다.

“느낌을 묵살하고 건성으로 사는 세상은 무덤덤하지요. 그 느낌을 고스란히 찾으면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이 될까요? 늘 바쁜 척, 바쁜 핑계로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몸에 대해서 맹신하는 것, 개인적으로 상처 있는 사람이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세상을 정말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것도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 적응하기 어려운 세상이죠.
우리가 모른다는 것은, 아직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해서이지 보려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푸르륵 참 – 시인과 서예가
‘~ 참말로 죽도록 좋아해서 참죽나무다/살구나무도 참자를 빼면 곧장 개자가 들어붙기 일쑤라 꼭 참자를 붙여주길 바란다/이웃하고 사는 나무들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참새다/하루 종일 부지런히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푸르륵 참 푸르륵 참/나무마다 참자를 붙여주고 다닌다/가까운 이웃에 시인도 하나 있는데/녀석들 번번이 건너뛴다.’

“살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도, 가장 많이 한 일도 시 썼던 일로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특정 시나 시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시’라는 장르가 좋았어요.” 
소년 시절, 시를 쓰면 선생님들로부터 칭찬 받는 것이 좋아 시를 좋아 했던 시인은 시를 배우고 싶어 국문학과에 들어갔답니다. 참 시인이 되고 싶은 시인은, 썩지 않고 얼지 않게 세상을 품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시인 한 번 돼 보려고 악착같이 썼는데, 시인이 되고 나니까 목숨 걸고 쓸 일이 없어졌어요. 거기다 시집도 한 권 냈겠다, 안 쓰는 것도 쓰는 것도 아니고, 농사짓기도 바쁘고 여러 가지로 바빠서, 바쁘다고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는 배울 만큼 배웠고, 또 더 깊이 배우면 뭐 한데요? 크하하하. 뭐든지 너무 깊이 하는 것은 잘 안 돼요. 내가 어느 정도 하고 있구나 하면 자연스레 멀어져요.”
욕심이 없다는 표현인가요?
“음…. 그럴 수도 있죠. 내 마음에 안 들으니 쓰고 또 쓰는 것이지, 또 다른 시집을 내야 겠네 무슨 상을 타야 겠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붓글씨도 그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예반에 들어가면서 시작한 것이, 사실 서예학원을 20여 년 하며 돈벌이도 하긴 했지만, 죽어라고 쓰면 어느 순간에 내가 왜 이걸 쓰고 있지? 세상에 이것만 있나? 뭘 이걸 악착같이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유가 생긴다 할까? 어느 정도 되면 이젠 됐나 보다 하죠.”
 “어떤 기회가 오면 다시 시작하고 쓸지라도,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행하는 것이지, 해도 해도 마음에 안 드니까 계속 반복하는 것이지, 그걸로 뭘 하고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그가 붓글씨를 가르쳤던 제자가 큰 상을 탄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상을 타는데 왜 선생은 상 하나도 못 타냐고 을갱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빠짐 – 몸살림운동 · 명상
“아내 몸도 안 좋고, 내 허리도 안 좋았어요. 수지침이나 지압 등 별 것을 다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잘 아는 스님으로부터 몸살림운동이란 것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구경 갔다가 푹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몸이 어느 정도 잡히고 웬만큼 좋아지니 그것도 안 해집니다.”
“명상도 4~5년 열심히 했습니다. 수련은 정말 좋습니다. 몸살림운동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정말로 진짜 좋지만 그것도 마찬가지로 오래 하지는 않습니다. 명상으로 몸이 정화되니 맑고 건강하긴 하지만, 사실 명상은 더불어 살며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들이 좋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서는 지금은 아플 때만 합니다.”
명상을 하면 병이 낫느냐 물었더니 낫는다고 말하는 시인도 한 때는 엄청 술을 마시더니, 어느 날 뚝 끊었습니다. 
“더 계속하면 다른 능력도 생길테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보통 생활인으로 사는데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러려면 자신을 그만큼 볶아야 하잖아요.”   
“필요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라서, 나 혼자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멈추죠. 내 만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해인가 시인이 자작시를 붓글씨로 써 준 합죽선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써 주고 싶을 때까지 죽 기다려야겠습니다. 
 
바로? 바로! 바로. - 바로 사람
‘바로’는 ‘거짓이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사리나 원리‧원칙 등에 어긋나지 아니하게’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냥 시인인 줄만 알고, 어린이집 주방에서 맑고 신선한 채소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로만 알고,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치는 붓선생인줄만 알던, 사과나무를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농부로만 알던, 안구건조증이 심하다고 투정을 하면 오줌으로 씻어보라고 하던 몸살림운동가로만 알던 바로님과 앉아 있는 동안 머리가 지끈지끈 하였습니다. 에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늘 성숙해지려 하는, 좋은 세상을 만끽하고자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바로시인은 말합니다.
“욕심 부려서 뭐 한 대요?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 그 밑에 엄청난 것이 있는데도 그걸 보지 못하고 삽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 알긴 아는데 인정하지 않는 것들이죠.”   
 
참시를 먹고 자라는 – 참사과 · 참표고
농사짓는 시인, 농사짓는 서예가, 바로 듣고 바로 보고 바로 말하려는 바로시인은 담백한 시를 쓰며, 날아가는 글씨를 쓰며, 시조창을 하며 돈가스를 튀깁니다.
사과꽃을 피우고, 표고버섯을 키웁니다. 때때로 몸살이 나면 몸살림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합니다.
사과꽃잎 하나하나에 걸릴 시인의 글, 담백하나 은근하게 달고 깊은 향기로운 사과로 익어가겠지요.   
참 사람, 참새는 비록 건너뛸지라도, 사과꽃은 참사참사 피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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