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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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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 승인 2018.04.04 11:51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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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후드득 지는 꽃! …동백

‘동백 따는 큰 애기야 동백만 따지 말고 이 총각 마음도 살짝 따다가~’-전라도 동백타령
 
남쪽지방에 매화가 활짝 펴 꽃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눈 속에서만 핀다는 설국 마른 봉오리를 찻잔에 넣습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조그만 찻잔 속의 물이 진홍빛으로 물듭니다.    
물에 잠기며 서서히 퍼지는 꽃모양을 보며 꽃의 미래인가 아니면 꽃의 과거인가 꽃의 비밀을 훔쳐보면서, 혹시 그곳에는 이른 매화가 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길에 나섭니다.

빛 좋은 햇살이 식물원길에 쫙 퍼졌습니다.
5월에나 핀다는 크로커스가 수선화색으로, 흰색으로 보라색으로 피어있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듯 조그만 꽃송이들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빨강과 노랑의 풍년화, 작은 먼지떨이 모양의 꽃잎도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시린 듯 바르르 떨고 있습니다.
봄 마중을 나온 사람들과 함께 온실로 들어서자, 어느 꽃에서 나는 향기인지 모르게 꽃냄새와 잎냄새와 흙냄새가 동시에 훅 밀려옵니다.
 

흰진달래 사이로, 머지않아 꽃대를 높이 세울 난초 사이로, 겨울꽃 동백이 피어있습니다.
향기로 나비와 벌을 오게 하는 뭇 꽃들과는 다르게 꽃잎의 붉음으로 새를 유인하는 꽃, 꽃잎 한 장 버리지 못하고 통째로 툭툭 떨어지는 꽃, 백련사 동백림 숲에서는 불붙듯 피어난다는 동백꽃입니다.

남쪽지방이 고향인 겨울나무, 동백의 계절은 11월부터 한겨울입니다.
따뜻한 기온을 좋아하는 동백은 해류의 영향을 많이 받아 꽃 피는 시기가 지역마다 다르지만, 남쪽의 꽃들이 몸 채 떨어져 땅 위에 꽃을 피워놓으면 중부지방에서는 그때서야 줄기 끝에 빨간 봉오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겨울온도가 너무 낮으면 동해를 입어 꽃 피는 시기에 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12월에 시작된 꽃 소식이 이곳까지 오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것도 해변가나 산이 아닌 온실 속에서, 붉고 희고 분홍빛깔의 꽃잎을 달고 피어난 동백꽃입니다.

꿀 많은 노란 수술을 곤충들이 그냥 둘리는 없지만, 워낙 추운 계절에 꽃을 피우다보니 그들 곤충들이 활동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이므로 추위를 덜 타는 동박새들이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있습니다.  
화분에 심겨진 채 꽃 핀 동백나무를 보고 있으니, 한동안 잊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느 겨울, 친구 따라 여수 오동도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눈 보기가 쉽지 않은 오동도에 싸락싸락 눈이 내리고, 동백나무 위에도 눈이 쌓였습니다. 광택이 나는 녹색 잎 사이로 눈을 맞으며 오도카니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경계라도 하는 어린아이 같이, 반짝이는 잎 위로 봉오리 봉오리를 맺은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후드득 후드득 붉은 눈을 털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그 모습이 신비롭던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겁니다.
늘 바다만 바라보며, 푸른 물결만 보며, 자라고 꽃 피우고 떨구는 오동도의 나무들. 지금은 아름드리 동백나무숲을 이루었겠지요. 그래서 더 소담스럽게 꽃을 피워내겠지요. 그리곤 온통 바닥을 붉게 물들이겠지요.

사계절 변하지 않는 진한 녹색 잎을 지닌,
비록 향은 없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동백꽃입니다. 더구나 툭툭 떨어져 땅 위에서 다시 한 번, 더 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마음에 볕이 잘 들도록 정리하는 봄날,
찬란한 동백의 꽃잎에 앉은 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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