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2 (수)
가을 낙지보다 맛 좋은, 동백과 함께 온…주꾸미
상태바
가을 낙지보다 맛 좋은, 동백과 함께 온…주꾸미
  •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 승인 2018.03.26 14:33
  • 호수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흑산도 연해에 사는 어류를 찾아내 저술한 책 「자산어보」에 “한자어로 준어, 속명을 죽금어라 하고 크기는 4~5인치에 지나지 않으며 모양은 문어와 비슷하나 다리가 짧고 몸이 겨우 문어의 반 정도이다”라고 정약전은 기록하였습니다. 웅크리고 쭈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이름 붙여진, 우리가 ‘쭈꾸미’라 부르는 ‘주꾸미’입니다.

연체동물 중 머리에 다리가 붙어있는 두족류에는 다리가 열 개인 오징어와 꼴뚜기가 있으며, 여덟 개인 문어와 낙지, 주꾸미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다리가 아니라 팔이라고 부릅니다. 몸집에 비해 힘이 센 주꾸미는 문어 모양에 낙지 색깔을 띠고 있어 작은 낙지라 불리기도 합니다. 거의 같은 길이의 다리를 가진 주꾸미에 비해, 낙지는 조금 큰 몸에 유독 긴 한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의 수심이 얕은 연안의 모래와 자갈바닥과 갯벌이 넓은 지역에서 비교적 흔히 발견되는 주꾸미는 주로 회자색을 띱니다. 등 쪽으로 돌출된 눈과 눈 사이 긴 사각형의 무늬가 있고, 양쪽 눈 아래 바퀴모양의 동그란 금색무늬가 있습니다.           
 바위구멍이나 바위틈에서 낮 동안은 숨어 지내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주꾸미는 5~6월의 산란기에 바다 밑 오목한 틈이 있는 곳이나 빈 소라껍질 속에 포도모양의 알을 낳습니다. 여느 모성애와 마찬가지로 어미 주꾸미도 50여 일 동안 빨판으로 알을 닦고 산소를 넣어주며 알을 지킵니다.

해류의 영향을 받아 피는 동백꽃처럼, 봄철 주꾸미의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하고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살도 바다의 영향입니다.

봄이 되면 서해안 수온이 서서히 오르며 주꾸미의 먹이인 새우가 번식합니다.  봄이 산란기인 주꾸미들은 새우를 많이 잡아먹고 살을 찌웁니다. 알과 살이 차  오르고 짙은 바다보다 더 짙은 먹물과 동백꽃만큼이나 은은한 향을 지닙니다.
알이 절반정도 든 봄철의 주꾸미는 오독오독한 식감의 알과 쫄깃한 몸통의 살로, 낙지보다 달고 문어보다 쫀득한 맛을 내는 것이지요.

가을낙지는 죽어가는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봄 주꾸미는 이런 가을 낙지 열 마리하고도 안 바꾼다 합니다. 봄의 주꾸미는 크고 살도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알로 꽉 찬 머리는 익으면 쌀처럼 생겨 옛 선인들은 주꾸미알을 별미라고 즐겼습니다. 글을 아는 물고기라 하여 양반 밥상에 반드시 올렸다는 문어(文魚)를 닮은 주꾸미가 봄이면 머리 속 가득 하얀 고두밥까지 채웠으니,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예전에는 봄철이 아니면 주꾸미는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젓갈로 담아 먹는 꼴뚜기에 밀려, 흔한 낙지에 밀려, 말려서 제사에 쓰는 문어에 밀려 대폿집에서나 나오는 주꾸미로 서민의 술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즐겨 먹다보니 계절에 관계없이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주꾸미는 그물이나 소라의 빈껍데기를 이용한 전통방식으로 잡습니다. 소라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몇 개씩 줄에 묶은 그물을 바다 밑에 가라앉히면 주꾸미가 그 속에 들어가고, 어부들은 이를 건져 올려 갈고리로 주꾸미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몸을 숨기는 것도, 알을 부화시키는 것도, 또한 주꾸미를 잡는 것도, 모두 소라의 빈껍데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주꾸미와 소라의 깊은 인연인 듯합니다.
        
이 봄이 가면 주꾸미는 머리 속의 알뿐만 아니라 몸도 여위어져 맛이 뚝 떨어집니다.
춘곤증이 찾아와 졸음이 쏟아지고 몸이 늘어지는 계절,
체내 콜레스테롤을 내려주는 영양소 타우린이 다량 함유된 주꾸미와, 음식궁합이 잘 맞는 돼지고기를 넣은 ‘주꾸미삼겹살볶음’과 곡주 한 잔으로, 봄밤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