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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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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억새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10.30 16:09
  • 호수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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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와서 은빛으로 가는 가을꽃 … 억새

어서 오라는 것인지, 빨리 가라는 것인지 억새가 손짓을 합니다.
이 계절의 들판과 산을 은빛으로 만드는 억새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억새는 주로 산꼭대기와 들판의 양지에서 자라며 회갈색열매로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잎의 모양과 꽃의 색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식물로,
잎이 가는 가는잎억새, 잎에 무늬가 있는 얼룩억새, 꽃의 색이 흰색에 가까워 흰억새, 잎의 가운데 잎맥에 하얀 선이 두드러져서 그냥 억새, 습지에서 무리지어 살며 잔 이삭에 까끄라기가 없어서 물억새입니다.
잎이 날카로워 손에 상처를 입기 쉬운 억새는, 줄기와 잎은 엮어서 지붕을 덮거나 가축사료의 재료로 이용되며, 뿌리는 이뇨제로 사용합니다.
억새는 나무도 잘 자라지 못하는 땅이나 바람 센 산정 분지, 뙈기밭이나 자투리 땅 두둑에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 갈대

씨앗을 통해 자신들의 종족을 보다 멀리, 보다 많이 퍼뜨리기 위해 달고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내는 식물들과는 다르게, 억새는 굵고 긴 뿌리가 옆으로 퍼지며 번식을 합니다.
봄에 나온 새싹은 여름동안 잎이 억세어지고 키가 자랍니다.
9월이면 꽃대가 굵어지고 줄기의 끝에서부터 부채모양으로 자줏빛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가늘고 끝이 뾰족한 작은 이삭들이 촘촘히 달린 꽃과, 낱꽃 밑에서 반짝이는 황백색 털은 수숫대의 꽃과 닮았습니다. 
11월이면 빗자루와도 같은 깔끔한 꽃은 자줏빛에서 황갈색으로, 종자에 털을 가득 매어 단 은빛열매로 자랍니다.
마냥 부드럽게 나부끼듯 흔들리는 자태에 비하면 잎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본인의 몸을 위협하는 외부의 물리적 공격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보호본능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름처럼 억세고 기가 살아있는 풀이라 하지만, 바람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지요.

지난연휴에 억새가 많은 지역엘 다녀왔습니다.
만개하여 활짝 핀 희뿌연 솜 모양의 꽃만이 억새의 자랑인줄 알았더니, 꽃망울이 벌겋게 맺힌 이삭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더구나 금빛 노을에 비쳐 긴 그림자를 만들며 하늘거리는 억새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늘 봐도 억새인지 갈대인지, 달뿌리풀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 벼과의 세 식물들을 서식지에 따라 쉽게 구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긴 팔로 춤을 추며

▲ 달뿌리풀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까지 올라가게 되었지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셋 모두 견디기 힘들었지만, 긴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는 억새는 견딜만하다며, 시원하고 경치 좋은 산마루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갈대와 달뿌리풀은 추워서 못 살겠다며, 억새와 헤어져 산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니 개울이 나왔습니다.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친 모습에 반한 달뿌리풀은, 달그림자를 보며 살겠다고 개울가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 살기에는 너무 좁았습니다. 갈대는 달뿌리풀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는데 바다가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갈대는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억새는 땅 위에서, 달뿌리풀은 냇가에서, 갈대는 강가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랍니다.  

바람이 밀어도 밀어도 눕지 않는 억새를 봅니다.
파란 하늘 밑에서나, 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아래서나, 안개 속에서나 황혼 무렵이나, 꽉 찬 줄기의 힘으로 바람과 저울질이라도 하는 듯, 가을 내내 황량한 산야를 은빛으로 장식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을밤 달빛아래 흔들리는 억새는 때때로 사람의 마음도 흔들어 놓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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