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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수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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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수세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10.16 11:09
  • 호수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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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을 더 여유 있고 한가롭게

선명한 주홍빛의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아람이 벌어진 탐스러운 밤송이들이 금방이라도 툭하고 떨어질 듯 매달려 있습니다. 노란 호박꽃과 더불어 커다란 늙은 호박이 길가를 차지하고, 떨어진 굵은 은행이 이리 둥글 저리 둥글 흘러내립니다.
남양면 백금리, 마을 초입을 지나는 길은 노란 물감과 드문드문 연두와 초록으로 그린 수채화를 밟고 가는 듯합니다.
 

커다란 죽나무 가지에 길게 수세미가 열렸습니다.
식이섬유소가 풍부하여 건강에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먹어본 적이 없어 맛은 어떨까, 빙빙 돌려가며 푸른 수세미 열매를 봅니다.
 
열대아시아가 원산지며 물을 좋아하는 수세미는 녹색의 줄기가 덩굴성으로, 덩굴손이 나와 다른 물체를 감으며 자랍니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에는 긴 잎자루가 있으며, 거칠고 특유의 냄새가 난다하여 바짝 코를 대 보지만 풋풋한 냄새만 솔솔 풍깁니다.
암수 한 그루인 수세미는 노란꽃이 피며 원통 모양의 녹색 열매는 주로 꼭지보다는 아래쪽이 둥글고 넉넉하며 세로로 골이 나 있습니다.   
어린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하며, 크게 자란 열매는 잘라 말려 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천식을 예방하고 알레르기 비염과 변비 등에 좋으며, 피를 맑게 하는 청혈작용을 합니다. 촉촉하고 윤기 있는 피부를 유지시키면서 알레르기를 예방하기도 한답니다.

수세미는 예전부터 아주 쓰임새가 많은 작물이었답니다.
노랗게 익은 열매를 삶아서 말리면 그릇을 닦는 아주 질긴 수세미가 되고, 그 삶은 물에 글리세린을 섞으면 여인들이 사용하는 화장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릇을 닦는 수세미는 속살만 쓰기 때문에, 크게 자란 수세미를 큰 솥에 넣고 물을 부어 삶습니다. 오랫동안 삶아져 수세미가 속살을 보이면 건져내 찬물에 담근 후 겉껍질을 벗겨내고 씨를 밀어 뽑아냅니다.
말끔하게 손질이 끝난 수세미를 햇볕에 잘 말리면 그릇을 닦고 청소를 할 수 있는 도구인 수세미가 됩니다.

자연 속에서 생활도구를 만들어 썼던 선조들의 지혜는 이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합성세재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에 기름기 있는 반찬그릇을 닦기가 수월하였으며, 수세미 몇 개면 일 년 내내 부엌그릇을 반짝반짝하게 닦을 수 있었답니다.  
 
수십 년 전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가면 장독위에서 하얗고 긴 수세미가 말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 봄에 씨만 뿌려 놓으면 돌보는 이가 없어도 기다란 수세미로 잘 자란다며 외할머니는 담 모퉁이에 수세미를 잊지 않고 심었습니다.
꽃이 피면 여유롭고 한가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예쁘기도 하지만, 주렁주렁 열리는 열매도 보기 좋지만, 노랗게 익은 열매를 손질하여 설거지할 때나 그릇을 씻고 장독을 닦는 도구로 만들어 이집 저집 나눠주는 재미라고 하였습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에게,
정갈한 살림의 맛을 가져다 준,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수세미를 봅니다.   
대롱대롱 열린 수세미도 수세미지만, 활짝 핀 노란꽃도 파란 가을 하늘밑에서 더 가을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수세미의 꽃말은 유유자적입니다.
눈이 시원해지는 노란꽃, 외할머니는 이 꽃의 의미를 알아서 좋아하셨는지,
단지 살림의 도구로써 딸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재미를 즐기셨는지 궁금해집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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