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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벼룩시장은 함께 즐기는 문화상품이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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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벼룩시장은 함께 즐기는 문화상품이다 ②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7.08.28 11:24
  • 호수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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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 싸게 구입하는 ‘황학동 벼룩시장’
▲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벼룩시장은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말한다. 벼룩시장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시대 파리에는 시 당국으로부터 허가와 일정한 공간을 배정 받은 ‘정규 벼룩’과 ‘무허가 벼룩’이 각자의 물건을 내놓고 판매했다. 그때 무허가 벼룩들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경찰이 사라진 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것 같다’고 해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벼룩이 들끓을 만큼 내다파는 물건이 오래된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한국의 벼룩시장은 유럽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벼룩시장은 서울풍물시장이나 황학동(동묘역) 벼룩시장이 유명하다. 또 서초토요벼룩시장은 공연 등 문화와 결합한 곳으로, 제주 서귀포 예술시장은 예술과 결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부산의 지구인벼룩시장, 대구의 수성못벼룩시장 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래된 물건의 유통과 재사용을 유도,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오래된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문화상품 및 경제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키우고 있다.
벼룩시장은 ‘오래된 미래’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독특한 마켓이다. 새로운 것, 뛰어난 것, 비싼 것, 유명 브랜드를 선택의 중심에 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벼룩시장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벼룩시장은 절약정신, 착한 소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글싣는 순서]
1. 원주시민 녹색장터 ‘삼삼한 토요일’
2. 절약정신의 출발 ‘황학동 벼룩시장’
3. 예술과 벼룩시장의 만남 ‘서귀포 예술시장’
4. 지구환경 보존을 위한 ‘부산 지구인시장’
5. 지자체가 주최하는 ‘대덕구 토요벼룩시장’
6. 농촌지역에서 가능한 벼룩시장의 형태

3000원에 40년 된 시집 구입

▲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헌책방.

‘琫準(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황동규 시집 ‘三南(삼남)에 내리는 눈’ 92쪽에 실려 있는 시이다. 제목은 시집 이름과 같다. 기자는 이 시집을 지난 19일 황학동 벼룩시장 안에 있는 헌책방에서 3000원에 구입했다.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시집을 우연히 발견한 순간 깊이 모를 희열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1975년 1월에 발행된 초판이 아니라는 아쉬움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시집은 1977년 8월에 발행된 중판으로, 어느덧 40살이나 먹은 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황학동 풍물시장, 황학동 도깨비시장, 동묘벼룩시장 등 별칭도 많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책만이 아니다. ‘지구상 물건이 모두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없는 것이 없다. 기자는 2004년에 나온 ‘우리 소리 태교’라는 씨디(CD)를 2000원에 사기도 했다. 디자인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분명 씨디로 세상에 나왔는데 120쪽짜리 책이 같이 붙어 있다.

이곳의 좌판은 평일 200~300개, 주말이면 600개 정도로 늘어난다. 그만큼 귀하고 독특하고 특별한 물건들을 취급한다. 이곳은 소위 구제시장이다. 옛날에 만들어진 물건을 주로 판다는 이야기다. 절판된 책, 보세 가방, 보세 신발, 엘피(LP)판, 중고 전자제품, 녹음테이프, 도자기, 안경, 시계, 카메라, 이불, 골동품, 심지어 검정 고무신까지 500원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는 물건들이 통용되고 있다.

▲ 무조건 골라잡아 1000원짜리 의류 좌판.

지역경제 견인하는 도깨비 방망이
이곳에서 돈 버는 비결은 ‘발품’이다. 원하는 것을 자신만의 안목으로 고르다보면 ‘이거다’ 하는 물품을 공짜나 다름없이 구입할 수 있다.
동묘 정문 옆에는 의류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파는 좌판이 몇 있다. 가격은 골라잡아 1000원이다. 좌판에 옷가지를 펼치자마자 난리 북새통이 벌어진다. 원하는 옷을 남보다 빠르게 ‘집어 가기’ 위한 움직임은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신기함과 놀라움을 준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도깨비시장이라는 별명처럼 지역경제를 살리는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다. 물건을 구입하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먹고 자면서 남기고 가는 돈이 주변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시장이 열리는 날과 열리지 않는 날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정기휴일이 따로 없는 벼룩시장 특성상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인데, 쉬는 날 인근 식당이나 숙박업소의 매출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한 식당 주인이 “20% 수준에 그친다”고 말할 정도다. 평일과 주말의 차이도 크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청계천로 2개 차선을 차지하는 300여 곳의 노점이 문을 열기 때문에 주변의 지역경제는 더욱 활기를 띤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집안에 남이 쓰던 물건을 들여 놓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변했다. 오래된 가구로 집안을 꾸미는 이른바 ‘엔틱 인테리어’도 활성화 되어 있다. 오래된 것들이 제 대접을 받는 사회가 유지되는 한 황학동 벼룩시장은 주변 경제의 중심 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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