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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배움의 빛’ 새로운 세상을 밝히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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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배움의 빛’ 새로운 세상을 밝히다 ④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7.07.31 10:58
  • 호수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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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해 하지 말고 학습장으로 나오세요
▲ 청양읍 송방1리 학습장 이순옥 교육사와 학습자들. 이곳 어른들은 마실 나오듯 학습장으로 나와 정말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청양군은 2008년부터 ‘찾아가는 초롱불 성인문해교육’(한글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글교육을 통해 한글을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자신감 회복과 소외감을 해소하고, 특히 배움으로 인해 좀 더 활기 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한글교육이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글교육은 많은 비문해자들을 기쁘게 했고, 새로운 세상 밝은 빛을 선사했다.
이름 석 자는 물론 버스도 혼자 타기 꺼려했던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만들었고, 백일장·시화전·편지쓰기 등 다양한 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올리게도 했다.
이에 청양군은 더 한껏 힘을 내 ‘한글 모르는 사람 없는 청양’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 아래, 2016년부터 ‘문맹률 제로화 해’에 도전, 올해도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에서도 우수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청양의 문해교육. 청양을 포함 전국의 몇몇 우수 학습장을 둘러본다. 문해교육을 통해 새 삶을 얻고, 밝은 눈으로 건강하게 100세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군내 학습자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문해교육사들도 소개해 본다. 이번 호에는 첫해부터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어른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혜진·이순옥 문해교육사의 이야기이다.  
 <편집자 말>

▲ 수업시간을 더 늘려달라고 조른다는 남양면 대봉1구 김홍섭·이상길 할머니(사진 왼쪽부터). 그리고 유해진 교육사.

한 풀어드린다는 마음으로 최선
유혜진(62) 교육사는 글 모르는 어른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해교육사를 시작했고, 어느 덧 10년이 흘렀다. 그는 학습자들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책과 학용품, 빨간색 가방을 나눠드렸는데 갓 입학한 일곱 살 아이들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정말 좋아하시더군요. 특히 ‘팔십이 넘었는데 글을 배우다니 꿈만 같네’, ‘난 평생 공부는 못할 줄 알았는데 하게 되네’, ‘차 탈 때 버스 표지판 읽을 줄만 알아도 좋겠어’, ‘글 배우면 농협에 가서 내 통장 만들거야’, ‘내가 살아온 얘기를 쓸겨, 책 몇 권은 나올겨’ 등 정말 다양한 바람이 나왔죠. 그 모습에 정말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외에도 인생의 후반기에서 비로소 글을 배우게 된 어른들은 글을 몰라 겪었던 어려움과 설움 등 한 서린 사연들을 전하기도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시대에 태어난 죄로 평생을 답답하게 살아야했다며, 늦게나마 호미자루 잡았던 투박한 손에 연필을 쥐고 공부할 수 있어서 감개무량하다고 눈물을 글썽이기 까지 했단다.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설레고 기쁘기도 했지만 두렵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어른들 모두 대단한 각오로 공부를 시작했죠. 하지만 머릿속에 쏙쏙 들어가지 않아 많이 속상해 하셨습니다. 읽고 쓰기를 반복해도 자고 나면 건망증이란 놈이 어느새 채 간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럴 때마다 유 교육사는 ‘하나를 배우면 둘을 잊어 먹을 연세’라며 ‘까먹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하시라’고 다독였다. 또 ‘할 수 있다, 장하다, 최고다’라며 함께 외치곤 했단다.

한글은 모두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이러한 유 교육사의 격려에 힘입어 학습자들은 열심히 학업에 임했다. 그 결과 어른들은 일기는 물론 가계부에 연하장까지, 가족들에게 휴대폰 문자도 보낼 수 있게 됐다. 또 송경자(장평 낙지리) 씨는 2016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 할머니께서 감격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신 적이 있어요. 손자에게 연하장을 보냈더니 우리 할머니 최고라며 연하장을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두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요. 또 한 어른은 할아버님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연하장을 보냈더니 감동해 옷 사 입으라며 거금 100만원을 선뜻 주시더랍니다. 이야기들이 참 많죠. 할머니들 대부분 글을 배운 후 제일 먼저 예금통장을 만드십니다. 통장을 손에 쥐고 정말 좋아 하시죠. 그 모습을 보는 저도 뿌듯하고요. 이처럼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감동적인 것입니다.”

▲ 인원은 많지 않지만 수업열기는 그 어느 곳보다 뜨겁다는 대봉1구 수업장 모습.

처음과 같은 열정으로 열심히
그는 ‘선생님, 선생님’하며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는 어른들의 까칠한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좋단다. 그러면서 골고루 칭찬과 관심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혹시 서운한 마음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계시지 않은지 걱정을 하기도 한단다. 
“오십 대 초반에 시작했는데 벌써 육십 대네요. 나이는 먹었지만 열심히 가르쳐 드려야겠다는 열정은 처음과 같아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잘 한일 중 하나가 교육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어른들이 글을 깨우쳐 행복해 지는 만큼 제 삶도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글을 모르신다면 지금 학습장으로 나오세요, 주저하신다면 가족들이 도와주세요.”

유혜진 씨는 현재 남양면 대봉1구, 장평면 낙지리, 청양읍 벽천리와 읍내3리에서 어른들을 지도하고 있다. 벽천리와 읍내3리는 직장인 반이다.
특히 대봉1구는 올 1월 처음 개설됐고, 학습자는 여덟 명이다. 이중 김홍섭(88)·이상길(85) 할머니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보청기는 물론 돋보기도 끼지 않고 공부한다며 칭찬했다.
“일주일에 2번 수업인데 목 빠지겠다며 한 번 더 늘려달라고 난리세요. 특히 홍섭 할머니는 가마타고 시집 와 12남매를 낳고 살아온 이야기를 써 라디오 방송인 싱글벙글 쇼에 보내, 그 이야기가 5월 전국에 소개되기도 했죠. 정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다른 곳에 비해 처음이어서 더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저도 그 열정에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공부하고 계시죠
또 다른 교육사인 이순옥(58) 씨도 2008년부터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10년을 되돌아보면서 때로는 지치기도 했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한다. 또 어른들과 함께하면서 유독 가슴 한쪽에 멍울로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청남 왕진2리에서 공부하던 김계순 어머니 이야기다.
“결석을 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어느 날부터 계속 빠지셨죠. 여쭤보니 병원에 입원하셨다더군요.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퇴원했으니 공부하러 갈게 하시더군요. 하지만 끝내 못 오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순간 가슴 한쪽이 꽉 막혀오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육사는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김씨 할머니의 딸을 만나게 됐고,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 졌었단다. 
“퇴원 후 어머니가 너무 조용하셔서 방문을 열고 보니 빨간색 가방을 품에 안고 방안을 힘겹게 서성거리고 계시더랍니다. 그 소리를 듣는데, 얼마나 학습장에 오고 싶으셨으면 그러셨을까, 가슴이 아프더군요. 찾아가 받아쓰기도 하고 책도 함께 읽어드릴 것을 하는 후회와 죄송한 마음에 하염없이 울었죠. 어린아이처럼 손뼉 치며 좋아하시던 어머니 모습도 스쳐갔고요. 하늘나라에서도 좋은 선생님 만나 재밌게 공부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이런 후회하지 않도록 어른들 면면을 항상 살피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숨어있는 비문해자 관리 급선무
이 교육사가 처음으로 학습자들을 만난 곳은 비봉 녹평리였다. 이후 정산 와촌리와 청남 왕진리를 거쳐, 현재는 청양읍 적누리와 운곡 미량리, 송방1리와 도서관에서 지도하고 있다. 이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학습자는 김계순 어머니에 더해 녹평리서 만난 김연희 어머니란다. 
“당신 이름을 쓰기 위해 하루 저녁에 노트 1권씩, 나중에는 국수종이와 달력에도 써오시더군요. 그렇게 6개월 만에 받침 없는 글자를 모두 쓰셨어요. 대단한 열정이셨죠. 또 현재 송방 1리 학습장에 11분이 계신데, 대부분 70대, 최고 81세십니다. 비교적 모두 여유로우신 분들이세요. 또 이 중에는 옛날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공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초등학력인정반 졸업자들을 위한 중학교 과정 개설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숨어 있는 학습자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 마련도 관건이란다. 그래야 청양군의 문맹률 제로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창피하다며 마스크 쓰고 공부하러 오시는 분도 계세요. 특별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 가시죠. 남성분들은 더 더욱이 안 나오시고요. 당당하게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했다 퇴원 후 바로 한글을 시작한 것이 재활에 큰 도움이 됐다며 스승의 날 전화를 해주는 학습자, 제2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 같다며 죽는 날까지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또 다른 학습자의 감사 편지에 보람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는 이 교육사.
“5년 전 쯤 평생교육진흥원 연수를 갔는데, 20년 된 문해교육사 한 분이 ‘문해는 늪’이라고, ‘발을 넣으면 뺄 수 없을 만큼 묘한 매력이 있다’하시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어른들과 만나니 발을 빼기가 어려워요. 앞으로도 어른들과 함께 나이 들고 싶습니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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