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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배움의 빛’ 새로운 세상을 밝히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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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배움의 빛’ 새로운 세상을 밝히다 ②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7.07.10 14:26
  • 호수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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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굴 속에서 나온 것처럼 환해졌죠”
▲ 김입분, 조순옥 할머니와 용두리 후동마을 학생들(사진 앞줄 왼쪽부터). 조씨는 정산도서관 학습자이지만 후동마을에서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어 잠시 들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표선명 교육사.(사진 뒷줄 왼쪽)

청양군은 2008년부터 ‘찾아가는 초롱불 성인문해교육’(한글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글교육을 통해 한글을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자신감 회복과 소외감을 해소하고, 특히 배움으로 인해 좀 더 활기 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한글교육이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글교육은 많은 비문해자들을 기쁘게 했고, 새로운 세상 밝은 빛을 선사했다.
이름 석 자는 물론 버스도 혼자 타기 꺼려했던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만들었고, 백일장·시화전·편지쓰기 등 다양한 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올리게도 했다.
이에 청양군은 더 한껏 힘을 내 ‘한글 모르는 사람 없는 청양’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 아래, 2016년부터 ‘문맹률 제로화 해’에 도전, 올해도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에서도 우수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청양의 문해교육. 청양을 포함 전국의 몇몇 우수 학습장을 둘러본다. 문해교육을 통해 새 삶을 얻고, 밝은 눈으로 건강하게 100세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군내 학습자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문해교육사들도 소개해 본다. 이번 호부터는 청양군 성인문해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학습자들과 문해교육사들을 소개한다. 우선 표선명 교육사가 지도하고 있는 정산도서관 학습장 조순옥 씨와 김입분 씨의 이야기다.
 <편집자 말>

공부보다 친구가 좋았던 조순옥 씨

▲ 한글을 배운 덕분에 이륜자동차 면허를 취득했다는 조순옥 씨.

조순옥(66·정산면 해남리) 씨는 정산도서관 학습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4년 전부터로, 그 동안 수업을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학업 기회를 놓쳤던 대부분의 비문해자들. 하지만 조씨는 넉넉한 가정의 6남매 중 외동딸로, 형편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를 멀리했단다.
“숙제를 하지 않아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 결석하기 시작했고, 결국 초등학교 1학년 중퇴자가 됐죠. 이후 세월이 흘러 결혼해 아이들을 낳으면서 한글의 필요성을 알게 됐어요.”
그는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으면 살겠지 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가정통신문이나 성적표를 가져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읽지도 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잘 버텼다. 이후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요양보호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요양보호사들은 매일 일지를 써야하는데, 한글을 모르니 난감하더군요. 처음에는 남편이 써 주는 대로 그렸지만 답답했죠. 그렇게 1년여 지난 후 아는 언니가 한글공부를 시작했다는 소리에 당장 학습장을 찾아갔고, 저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조씨는 책과 노트를 받았을 때의 벅차오름을 기억한단다. 한글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어두운 굴속에서 나온 것처럼 환해지며 몸이 둥실둥실 뜨는 것 같았다고도 말한다.
“표선명 교육사께서 처음부터 계속 지도해 주십니다. 감사하죠. 남편도 고생 많이 했어요. 공부 가르쳐 달라고 계속 제가 졸랐고, 처음에는 해남리에서 역촌리 학습장까지 계속 태워다 줬거든요. 공부를 시작한 후 아이들도 제가 문자도 읽고 답장도 한다며 좋아했습니다.”
절실했던 만큼 열심히 공부한 조씨는 지난해 2월 전국 3509명의 작품들과 겨뤄 학습자 체험수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그해 10월에는 이륜자동차 면허도 취득했다.
“문해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도 눈뜬장님이었을 거예요. 한글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지금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요양보호사 일지도 제 손으로 쓴답니다. 요즘은 영어 알파벳까지 배워 읽고 씁니다. 글을 배우니 세상이 바뀌더군요. 모두 고맙습니다.”
조순옥 씨는 하루 2명의 어른들을 돌보면서 정산도서관에서 계속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그는 새로운 세상을 얻은 듯 너무 재미있단다.

하루하루 너무 행복한 김입분 씨
김입분(82) 씨는 정산면 용두리 후동마을 학습장 학생으로, 어렸을 때는 형편이 어려워서, 결혼 후에는 농사지으며 6남매를 키우느라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고향인 공주에서 계속 살다 세종시가 생기는 바람에 청양으로 이사를 왔고, 셋째 아들 내외와 살고 있어요. 6년 됐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외로웠죠. 아는 사람은 물론 갈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3년여가 지났는데 한글교육이 시작되니 회관으로 오라고 마을 총무가 연락했더군요. 그 길로 달려가, 공부를 시작했죠.”
김씨는 수업 날을 손꼽아 기다려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이후 하루하루 지나면서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친분도 쌓고, 덕분에 외로움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아들은 “공부하는 날이에요. 빨리 가셔야죠?”라며 어머니의 수업시간을 챙겨주기까지 했다. 

“공주에 살 때는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청양에 와서 한글을 배우고, 지난해에는 선생님이 멜로디언도 가르쳐줘서 충남도청 평생학습자 발표대회에 반 친구들과 함께 가 연주도 했어요. 살면서 면사무소가 가장 큰 곳인 줄 알았는데, 문예회관을 가보니 더 크더군요. 처음으로 소풍도 가봤고 충남학 강좌도 들었어요. 이사 와 한글을 시작한 것이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합니다.”
지난 3년간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은 결석하지 않았다는 김입분 학생. 그는 아직도 받침은 어렵지만 올해에는 체험수기 대회에, 또 내년에는 초등학력인정반에 도전할 계획이다.

어른들에게 삶의 지혜 배워요
조순옥·김입분 씨를 지도하고 있는 교육사는 표선명(59)씨다. 문해교육사 2기로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9년 째 어른들에게 한글을 지도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까지 있는 그는 다른 일자리가 많았었다. 하지만 한글교사가 더 보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교육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정이 잘 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반겨주는 어른들이 있어서다. 

그는 교육사로 활동을 시작한 지 5년 여 만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평생교육·청소년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자신의 발전은 물론 어른들에게 좀 더 많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올해 3월 영광의 졸업장을 받았다. 
“사이버 수업이었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기간도 길었고요. 하지만 어른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젊은 내가 못할까 하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뵙다보니 어른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저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어른들은 저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답니다. 앞으로도 제 능력이 되는 한 어른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습니다.”

친구처럼 딸처럼 즐겁게 수업
표 교육사는 현재 정산 도서관과 용두리, 목면 본의 1리를 방문해 어른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정산도서관 학습장은 화·수·목요일마다, 일반반에 더해 초등학력인정반이 함께 열린다.
“안연옥, 임정숙, 정해년, 그리고 눈이 아파서 못 나오신 서순옥, 한씨 할머니께서 초등학력인정반 학생입니다. 그리고 전윤휘 할머니와 조순옥 씨께서 일반반이시고요. 안연옥, 정해년, 전윤휘 할머니는 목면에서 오실 정도로 열정적이십니다. 또 용두리 후동마을 학습자 중에는 93세 명을례 할머니가 계시는 데, 글씨도 또박또박 정말 잘 쓰십니다. 특히 후동마을 학습자들은 윤삼복(86), 김재운(81), 김남순(79), 명소란(87), 김봉기(84), 김입분(82), 함순희(78)할머니까지 여덟 분이신데 평균 여든 이상 되셨어요. 공부도 공부지만 학습장에서 친구도 만나고, 그림도 그리고요.”

표 교육사는 할아버지 학생은 거의 없단다. 한글을 몰라도 자존심 때문에 참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 수업에 참여하는 어른들이 청양처럼 많은 곳은 드물다고도 말한다.
“본인부담이 없어요. 오셔서 공부만 하시면 됩니다. 청양처럼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는 곳도 드물고요. 그렇다보니 학습장은 물론 학습자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보니 가끔은 딸처럼 또 친구처럼 아옹다옹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표 교육사. 그는 수업 후 할머니들이 조물조물 만들어 주는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정말 좋단다. 앞으로도 어른들과 이렇게 아옹다옹 하면서 즐겁게 학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한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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