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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의 끝 ‘친구 맞듯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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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의 끝 ‘친구 맞듯 담담하게’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7.05.29 15:56
  • 호수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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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 문화 선도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 윤서희 팀장, 정은주·유명숙 상담사, 홍양희 공동대표.(사진 위쪽 시계방향)

생명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죽음이다. 태어나는 것이 본인 선택이 아니듯 우리들에겐 죽음을 피할 선택권 역시 없다. 상상할 뿐 경험할 수 없고, 언제 닥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두려운 대상일 것이다.
최근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행복하고 담담하게 맞이하자’는 운동이 퍼지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준비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다면 의연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하자는 것이다. ‘웰다잉(Well Dying)’이다. 
웰다잉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맞이하는 행위’, 넓게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오늘 소개할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설립취지와 일맥상통한다.
‘사전의료의향서’는 말기질환으로 회복가능성이 없고 자신의 의사결정능력이 상실됐을 때를 대비해, 건강할 때 생명 연장 및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여부에 대한 의사표시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문서다. 품위 있는 죽음 및 죽음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의 실현 수단이다. ‘실천모임’에서는 이처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격려하고 의료인과 가족이 의학적 결정을 내릴 때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반영하도록 홍보·지원하는 일을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사무실에서 홍양희(70) 공동대표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웰다잉 교육을 최초로 시작하는 등 죽음준비 교육을 꾸준히 펼쳐 온 사회복지법인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회장을 15년간 맡다, 2013년 퇴직 후 실천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 논란 많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서 죽음과 관련한 자기결정권 중요성을 소개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개인과 종교 및 학술단체, 각 당의 복지재단, 시민사회단체가 사전의료의향서·생전유언 등 자기결정권 실행 수단을 소개한 것. 그러다 1997년 보라매 병원의 한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실형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의료계에서는 연명의료중단을 거부 또는 회피하는 방향으로 관행이 굳어졌었다.(이하 의향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 부인이 의사에게 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후 퇴원시켰는데 사망했죠. 그러자 시댁 식구들이 소송했고,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후 병원은 가족이 원해도 퇴원시키지 않았어요. 기존에는 회복이 어려우면 집으로 모셔라 했었거든요. 무의미한 연명으로 죽음과정만 길어진 채 고통을 겪는 환자를 보면서 품위 있는 죽음, 인간의 존엄성, 환자의 자기결정권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2008년 또 한 차례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김할머니 사건이다.
“가족들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연명의료중지 요청 소송을 했고 대법원에서 승소(2009. 5. 21)한 사건이에요. 존엄사에 대한 헌법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에 큰 획을 그었고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죠. 품위 있는 죽음, 존엄한 마무리 등 큰 이슈였습니다.”

▲ 사전의료의향서 전문상담사 교육장면.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 확대 
이후 정부, 의료계 등에서 여러 대응방안을 내놨다. 특히 2010년 7월 보건복지부 지정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한국골든에이지포럼·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 ‘의향서를 통한 환자 의사 존중 합의문 내용’을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대상 환자,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 범위, 작성조건 및 절차, 의사결정기구 선정방법 등을 포함시켰다. ‘의향서’ 서식이 개발되고 용어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강할 때 사전의료의향서 미리 작성 등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권장사항도 담겼다.
이후 관련전문가들이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의향서 의미와 작성법을 소개했고, 2011년부터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에서 상담실 운영 및 전화 상담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 사업이 종료되자, 2012년 ‘의향서 실천모임’은 준비 모임 및 발기인대회를 거쳐 2013년 5월 창립식을 가졌다.
“2014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캐치프레이즈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시작한 2011년부터 매년 5-6만부 정도 서식을 인쇄해 배포했고, 처음에는 저희가 원본으로 보관하다 2013년 이후부터는 원본과 확인증을 본인이 보관하도록 하고 있어요. 현재 배포된 사전의료의향서는 약 20만 건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가족과 상의 후 자필로 작성
상근 직원 외에 20여명의 봉사자가 교대로 출근해 상담해주고 있는 실천모임에 걸려오는 하루 평균 상담전화는 30~40여 건, 이중 70~80%가 60~80세 사이다.
상담자들은 “가까운 분들의 고통스런 임종을 지켜봤다, 고통스런 죽음을 원치 않는데 이런 문서가 있다니 반갑다, 인간답게 죽음을 맞고 싶다, 가족에게 부담주기 싫다, 자녀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등 이야기를 하며 의향서를 작성하겠다고 말한다.    
“저흰 의향서를 사랑의 문서라고 부릅니다. 건강할 때 맑은 정신으로 직접 작성한다, 치료를 다 하되 회복이 불가능할 때 연명치료 하지 않고 존엄하게 마무리하겠다, 가족과 함께 앉아 지난 삶에 감사해 하면서 작성하는 문서라는 뜻입니다.”
홍 대표는 의향서는 반드시 본인이 자필로 작성하고, 가족과 충분히 상의 후 동의를 받아서 작성할 것을 권한단다. 직계가족인 부부, 자녀 등 대리인은 작성자가 의식이 없을 때 그 의지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반드시 대리인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도 전한다.
 
‘죽음’은 더 이상 금기어 아냐
실천모임의 한 상담봉사자는 “상담하다보면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접한다. 이별인사도 못한 채 부모·형제를 떠나보냈고, 슬픔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의향서 작성을 결정했다”는 상담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20년 가까이 죽음에 대해 공부했지만 정작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제 남동생에게는 의향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며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또 가족들과 이별식은 하고 떠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봉사자 정은주 씨도 “죽음준비 교육 후 웰다잉 강의를 하다 실천모임에서 봉사를 시작했다”며 “당뇨 합병증으로 무릎까지 절단한 환자 본인이 전화해 의향서를 작성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담 봉사자들은 모두 웰다잉 강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며 “민간복지재단 또는 실천모임에서 운영하는 교육을 수료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실천모임에서는 의향서 정보 및 작성방법 안내 외에도 이처럼 의향서 교육 상담사 배출, 마지막 이야기를 꺼내 놓도록 하는 ‘사전돌봄계획’ 프로그램과 ‘웰다잉 강연회’도 주관한다.
실천모임 관계자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는 이제 금기어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이제는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 되도록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시나브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문의는 실천모임(상담센터 02-2281-2670)으로  하면  된다. 상담시간은 월~금, 오전 10~오후 5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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