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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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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05.21 11:53
  • 호수 11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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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즐거움이 마음의 즐거움으로 … 수선화

‘멍하니 아니면 사색에 잠겨 있을까/ 수선화들은 고독의 축복인 내 마음의 눈에 반짝이노라/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기쁨이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 추리’ - 워즈워드의 시 ‘수선화’ 부분
 
담장 밑에, 백세공원 구기자 길에 빨강과 분홍의 양귀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멀쑥하니 가는 키에 큰 꽃을 머리에 이고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도 바람에 쏠리게 합니다.  
푸른 나뭇잎 밑으로, 양귀비 꽃잎 위로 눈송이처럼 하얀 솜털들이 막 날아옵니다.
꽃가루받이를 끝낸 식물의 씨앗이 붙어있는 솜털이 자신의 종족을 퍼트리려고 보다 멀리, 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떠나고 있습니다.
희끗희끗 날아가는 솜털을 하얀 철망 사이로 수선화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뒤늦게, 늦어도 한참 늦게 수선화가 어느 집 울타리 안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암술로 인해 비늘줄기로 번식하는 행운의 상징 수선화는 오래도록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호메트는 영혼을 살찌게 하는 꽃이라 칭송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원과 교회의 장식뿐만 아니라 장례용 꽃으로 사용하며 부활과 영생을 기도하였습니다.    
원종은 60여 종이지만, 원예품종은 수 천종에 달하는 수선화는 그 종류만큼이나 꽃의 모양새와 색이 다양합니다.
하양과 노랑꽃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선화의 6장 꽃잎은 오그랑오그랑한 모양의 속꽃잎을 받들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주름종이 같기도 한 여러 색의 속꽃잎은 부화관이라 부르며, 그 모양이 옥대에 받쳐놓은 금술잔 같다하여 금잔옥대라고도 부릅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 부화관을 ‘눈’으로 여기기도 하였답니다.     

얼마 전, 제주도의 추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추사관 뒤꼍에는 탱자나무 꽃이 눈부시게 피었고, 뾰족한 탱자가시 밑으로 이미 꽃 진지 오래인 수선화의 초록 잎만 촘촘히 남아 있었습니다. 
제주도 유배 당시에 추사 김정희는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세한도를 그리며,  찬바람 속에서 일찍 피는 수선화를 몹시 아끼고 좋아하였답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는 수선화를 본인의 겨울 같은 생과 비교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점 겨울 마음/송이송이 둥글어라/그윽하고 담담하고/영롱하게 빼어났네-  수선화에 대한 시를 쓰고,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을 보며 스산하고 처연한 마음을 다스렸을 듯합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수선화의 나팔 같은 눈을, 출렁거리는 눈을 마주 봅니다.
추사 김정희와 마주했을 눈,
마호메트와 마주했을 눈인 노란 부화관을 보고 있자니,
연못에 비친 본인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속에 빠져버린 그리스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우나 서글픈 얘기가 떠오릅니다. 미소년의 밝은 눈이 더 큰 세상을 보기 전에 이미 본인의 고요하고 맑은 눈에 반하였듯이, 아마도 이 부화관 역시 미소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푸른 하늘밑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아 한 장 한 장 반짝이며 팔랑대는 포플러,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순하디 순하던 여린 잎사귀들이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개구리소리
달달한 아카시아 향기
지금 이 계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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