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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선생의 구기자 업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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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선생의 구기자 업적 계승
  • 이존구 기자
  • 승인 2017.05.21 11:00
  • 호수 11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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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면, 신흥리에 시배지 건립 추진

목면(면장 황우원)이 신흥2리 임장굴에 ‘구기자 시배지’ 표석을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험재배에 성공한 것은 물론 청양하면 전국에서 손꼽는 특산지로 거듭나게 만든 소헌 박관용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황우원 면장은 “청양이 구기자의 본고장으로 유래된 것은 박관용 선생의 집념 덕분”이라며 “청양 구기자의 명성이 대대손손 이어질 수 있도록 다음 달 중으로 시배지 표석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용 선생은 1922년 15살 때 자택 울타리에 하얀색 나무줄기에서 열리는 빨간 열매를 봤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구기자이며, 그 열매를 말려 놓으면 가을에 상인들이 사 간다는 말을 들었다. 값(600g 당) 또한 쌀 때는 70~80전, 비쌀 때는 1원이 넘어 당시 밭 한 평에 10전, 20전 할 때이므로 잘만 재배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박 선생은 어떠한 거름을 주면 잘 크고, 거름 주는 시기는 언제가 좋은가를 연구하는 한편 구기자를 말려서 상품화하는 방법도 창안했다. 그리고 ‘구기자를 심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박관용 선생은 1926년 19살 때 밭 991㎡에서 102kg(170근)을, 다음 해는 2578㎡에서 마른 구기자 2418kg (4030근)을 수확했다. 구기자 농사가 까다롭고 힘들어도 논·밭농사보다 몇 곱절의 이익을 안겨주면서 1930년부터 한두 집 구기자를 심는 농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박관용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유래비가 2008년 운곡면 위라2리에 세워졌다. ‘구기자 이야기’와 ‘구기설’이며, 비문에는 구기자를 재배하게 된 동기, 구기자의 약리와 성질 등 박 선생이 남긴 기록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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