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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사랑해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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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사랑해요. 편히 쉬세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05.15 13:37
  • 호수 1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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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툭’ 내 발 끝에 상자에 담아두었던 미완성된 목도리가 떨어졌다.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튼튼했던 목도리는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난 목도리에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2~3년 전 외할아버지 옷차림새를 보고 포인트가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해서 목도리를 떠드리기로 했다. 실 색깔은 할아버지께 잘 어울리실 것 같은 갈색과 초록색을 골랐다.
​갈색실로 한 단, 초록실로 한 단씩 목도리를 만들어간다. 나는 초록색실을 잡았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는 할아버지 발등에 자주 올라가서 걸음마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가 스텝에 맞춰 “걸음마, 걸음마”하시면 할아버지 발등에 몸을 싣고선 나도 “걸음마, 걸음마”하며 한 걸음씩 내딛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선 어여삐 여기시는 것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한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나랑 동생은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좋아해 서로 앞 다퉈 타려했었다.
​할아버지가 앉으시면 앞에 빈 공간에 올라선다. 손에 느껴지는 오토바이의 진동과 함께 청양 곳곳을 누볐다.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빠르게 초록색 단이 만들어진다.

할아버진 맛있는 것들을 많이 주셨다. 직접 만드신 계란식빵, 빵집에서 사 오신 다양한 빵들, 숟가락이 비었을 때마다 올려주시던 갈치, 그 중에 나는 할아버지의 콩국수를 좋아했다.
여름이 되면 할아버지 댁에 가서 검은콩으로 만든 콩국수를 먹었다. 할아버지가 믹서기에 콩을 넣고 갈면 할머니는 요리를 해주셨다. 그 맛은 어떤 음식의 맛도 견줄 수 없었다.
초록색 단이 완성돼 갈색실로 뜨개질을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아프시다. 점점 말라가시고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마음이 급해 한 코를 빠뜨려 목도리에 구멍이 났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명절에 부모님 뵈러가듯 한 두 번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 날, 병원에서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드렸다. 위태롭게 매달려 움직이던 갈색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목도리는 주인을 잃어버렸다. 목도리가 상자에 들어가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부끄러워 마지막까지도 해드리지 못한 말, 할아버지! 사랑해요.
<유소연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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