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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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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의 추억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2.12 20:51
  • 호수 11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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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19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은 6월 항쟁이 아직 현재 진행형임을 증명해준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저항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부패한 권력층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과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6월 항쟁에 직면한 당시 노태우 정권은 소위 6·29선언을 통해 성난 민심을 가라앉혔다. 당시 6·29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기본권 보장, 언론자유 보장, 정당활동 보장, 지방자치 실시 등 8가지 대국민 약속이 담겨 있었다. 6·29선언의 대국민 약속 중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은 것이 지방자치이다. 대통령 직선제, 기본권보장, 언론자유 보장, 정당활동 보장 등은 현실화 되었지만, 지방자치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1995년부터 민선자치를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가 한 때 지방분권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서울사람들의 완강한 반대로 사실상 좌초되었다.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은 의례적 슬로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나라가 지탱되고 국민생활이 크게 지장 받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 덕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행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하철을 정상 운영한 덕에 평화적 촛불시위가 가능했고, 다른 지방정부 대민서비스 업무도 차질 없이 운영되고 있다. 반면 중앙 행정부의 경우, 사실상 마비상태나 다름없다. 국방부가 일본과 방위조약을 맺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공개했지만, 대부분의 중앙부처는 휴면상태이다. 미국 대선 이후 현실화되고 있는 경제적 위기징후나, 사드미사일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과의 외교국방 문제 등 국가적 난제가 쌓여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늘 청와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앙 행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이다. 거의 모든 행정부 조직을 중앙이 지휘를 하고, 지방은 그 휘하에서 명령을 받고 실행하는 구조이다. 세금도 예산도 거의 모두 중앙정부가 좌지우지 한다. 외교나 국방처럼 국가적 사안이 아닌, 즉 교통, 범죄, 치안, 주택 등 지역이 관리해야할 사안도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도로나 철도 등은 건설교통부가, 범죄와 치안은 검찰과 경찰이 주도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청와대와 대통령이 있다. 자연 대통령이 제왕처럼 군림할 수 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결코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왕처럼 군림할 수는 없다. 한국에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되었다면, 청와대가 세무조사를 위협하고, 올림픽 이권을 챙기고, 연기금으로 재벌에게 특혜를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방자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세금도 지방정부가 걷고, 올림픽도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공무원 연기금도 지방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를 퇴진시켰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군사쿠데타나 계엄령을 걱정하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6월 항쟁으로 표출된 민주주의 열망이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권력을 분산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예방하는 지방자치가 부실한 탓이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민주국가에 우리 후세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려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2016년 촛불항쟁의 역사적 유산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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