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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캐나다 연수보고서 ③ … 이기성/ 청양군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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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캐나다 연수보고서 ③ … 이기성/ 청양군의회 의장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2.05 14:20
  • 호수 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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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 창출이 청양의 미래 좌우한다

캐나다는 1960년대부터 나이아가라폭포의 관광수입만으로도 국민들이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되었다.
우리 청양도 관광수입으로 군민의 행복한 삶을 지향할 수 있도록 칠갑산, 천장호수, 장곡사, 고운식물원 등 청양의 자원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하고, 이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1박2일 동안 즐길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해야 한다. 또 청양읍 시가지를 50년대~80년대 옛 거리로 리모델링하여 수입을 올리고,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려야 한다.

올림픽도 잘못 치르면 적자
여섯 번째 날 목적지 몬트리올은 퀘벡 주에 속해 있으며 ‘북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유럽 색채가 강한 도시이다. 캐나다 제2의 도시로 최대의 무역항이자 다양한 공업이 발달한 도시인데 섬 중앙에 ‘몽레알산’이 있고, 공원과 운하가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몬트리올은 우리나라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열릴 당시 구소련, 중국, 북한, 체코 등 사회주의국가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아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몬트리올은 경제적 적자를 피할 수 없었고, 그 여파로 인해 현재까지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성 요셉 성당이었다. 캐나다의 수호성인인 요셉을 모신 성당으로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순례지로 유명하다.
이어 우리 일행은 몬트리올에 있는 장딸롱 재래시장(Marche Jean Talon)을 방문하였다. 수산, 육류, 과일, 야채 등을 팔고 있는 재래시장은 비교적 깨끗하게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많이 비슷하였다. 이곳 재래시장 상인들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나이 든 상인들과는 다르게 젊은 상인들이 많아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퀘벡시
7일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식사 후 우리 일행은 퀘벡으로 이동하였다. 숙소에서 퀘벡까지는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북미 유일의 성벽도시 퀘벡은 최초 프랑스계 백인들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하며, 이후 영국과 여러 번 쟁탈이 계속된 끝에 영국령이 되었으나, 여전히 프랑스계 거주민이 다수를 이루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버스가 퀘벡에 가까이 갈수록 날씨는 더욱 추워졌고, 창밖 산 위로 하얀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발목을 덮을 만큼의 많은 눈이 내렸다.

퀘벡시에 도착한 뒤에 보니 도시 규모는 크지는 않았지만, 정통 유럽풍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1892년에 건립된 ‘샤또 프롱트낙 호텔’은 전형적인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져 있으며, 퀘벡에서 프랑스 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쁘띠 샹플랭은 올드 퀘벡 로어타운을 대표하는 거리로 아기자기한 프랑스식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프랑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다양한 화랑이 한 골목에 모여 있으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야외 미술전시를 관람하는 듯 했고, 세인트 로렌스 강변을 따라 이어진 길은 왕의 산책로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은 화랑의 거리, 악사의 거리, 노르망디 상륙작전, 영국의 처칠 수상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협의하고 묵었다던 ‘샤또 프롱트낙 호텔’ 등을 견학했다.
특히 거리에 있는 작은 규모의 상가들과 로컬푸드 매장에서 직접 수공예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장인들의 이국적인 모습에 눈길을 빼앗겼다.

연수성과를 의정활동에 접목하자
연수 8일째 일행을 태운 버스는 아침 7시 캐나다를 떠나 뉴욕으로 출발했다. 버스가 한참을 달려 국경 가까이 도착할 무렵, 오랜만에 햇살이 밝게 떠올랐다. 얼마 만에 보는 따사로운 햇살인가. 우리 일행은 국경에 도착하여 미국 입국수속을 하는데 캐나다로 갈 때보다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다.
다시 버스로 한참을 달리니 창밖으로 미국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가진 버몬트 마을이 나왔다. 이곳은 비교적 깨끗하였으나,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31일 할로윈 축제를 한다고 하는데,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미국에 서 전해 내려오는 많은 유령들의 모습을 만들어 집 앞에다 진열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뉴욕으로 들어오면서 ‘아디론텍 마운틴’에 잠깐 들러 산책을 하였다. 이곳은 약 2억 년 전에 형성된 협곡으로 미국 동부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며 산책로와 계곡이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한인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미국과 캐나다 방문을 통해 보고 느낀 점을 토론하고, 청양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을 심도 있게 논의해 보며 이번 연수를 마무리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했다. 한국 가는 비행기에 올라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여정을 되짚어 보았다.
세계 제일의 선진국인 미국과 캐나다를 각각 4일 동안 머무르면서 평가를 하기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일부만 보았음에도 너무나 거대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강대국이지만, 자존심이 강한 나라로 국경과 국경을 마주한 채 서로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던 운전기사의 말이 기억난다. 미국에 온 지 10년 된 기사는 특기인 운전실력을 살려 가이드 드라이버를 하고 있는데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도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갑을 관계나 짧은 정년, 비싼 대학등록금, 퇴직 후 불안정한 노후에 대한 걱정이 덜하다는 것이다. 본인 일에만 충실하면 능력을 인정받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보장해주는 근무환경에 만족한다고 했다. 한국에 두 자녀가 있는데 첫째는 군복무 중이고, 둘째는 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는데, 곧 미국으로 데려와 생활할 예정이라 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현실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생계를 위해 외국으로 나간 많은 분들을 다시 국내로 들어오게 하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손 놓고 인재들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청양군민의 대표로서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겠다고 마음먹으며, 초선 당시 약속처럼 군민의 머슴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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