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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쓰는 편지,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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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쓰는 편지, ‘손편지’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2.05 14:07
  • 호수 11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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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동물들도 모두 겨울잠에 들어간 우성산길에는 마른 도토리나무 잎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그 중에서 곱게 마른 잎으로 몇 장을 주웠습니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몇몇 친구에게 나뭇잎 편지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내내 소식을 전하지 못한 친구에게, 말 대신 1년이 고스란히 담긴 나뭇잎에 글을 쓰고 싶습니다.
커피가 더 은은한 향을 내고, 눈 내리는 밤이 그리운 계절, 누구에게든 마음이 담긴 편지가 쓰고 싶은 계절, 누군가로부터 담담한 글씨로 쓴 편지가 받고 싶은 계절 탓이기도 합니다.  
 

여름에 받았던 편지의 답장을 쓴다고 편지지를 꺼내 놓은 채로 몇 달을 보냈습니다. 가을이 시작됐다고 편지를 써야지, 국화향이 달콤하다고 편지를 써야지, 화려한 산길을 걷다 왔으니 단풍 든 마음이라고 편지를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책상 위에는 몇 통의 편지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받은 편지와 보낼 편지가 엎치락뒤치락 섞여 있는 것입니다.

편지 쓰기를 즐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편지지를 고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쓰며 우체통을 찾아 편지를 부쳤습니다. 오로지 받는 이를 생각하며 받는 이에 대한 마음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어느 시절인가 밤새 써 놓았던 편지를 이튿날 읽다가 부끄러워 쫙쫙 찢어버린 기억이 한 두 번이 아닌 것이 생각납니다. 정작 엉뚱하게 마음에 없는 말만 쓴 채로 우체통에 넣고는 한동안 후회한 때도 많았습니다. 결국 부칠까 말까 망설이다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책상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서울에 살던 큰언니로부터 예쁜 소녀가 그려진 커다란 그림편지를 첫 편지로 받았습니다. 이곳저곳으로 몇 십 년을 데리고 다니다 잃고 말았지만, 불쑥 불쑥 그 첫 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받은 편지를 와이셔츠상자나 화장품상자에 그득그득 쟁인 채, 몇 번의 이사 때마다 신주단지처럼 챙기곤 하였는데도 말입니다.
  
추리고 추려 둔 상자 속의 편지를 꺼내 봅니다.
누렇게 바랜 것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커피로 얼룩진 것도 있습니다. 그랬지, 그 땐 그것이 최선이었겠지. 볼펜의 잉크가 번져 뿌연 글씨는 몇 십 년을 훌쩍 뒤로 가기도 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어쩌다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밤에 읽는 묵은 편지는 퇴색된 추억을 불러내는 가벼운 향수 같습니다.   
30대 어린 나이로 세상을 뜬 남편을 향한 원망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16세기 때 쓴 원이엄마의 애처롭고 슬픈 편지와, 일찍 숨진 자식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글로 남긴 정약용의 편지를 읽어봅니다. 

편지는 쓰는 이나 받는 이나 서로에게 소중한 마음 전달체입니다.
가끔은 고마워서, 또 가끔은 그리워서 쓰는 편지, 오롯이 상대만을 생각하며,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은 그 어느 선물보다도 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바뀌기도 하고, 닫힌 마음을 열게 하며,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사람들은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소득보다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가장 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솔직한 마음을 글씨에 담아 짜릿한 감동과 메시지를 주는 편지는, 누군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을 이름으로 남겠지요. 일상에서 누군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는 그에게 편지를 쓸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손편지, 소박하고 그윽한 마음의 손 글씨 편지를 받았을 때, 읽고 또 읽어도 가슴이 뭉클한 떨림을 나도 누구에겐가 주고 싶어집니다.
세월을 따라가다 문득, 지난날이 그리워지면 편지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겨울채비에 촛불에 집회에 이런저런 뉴스들로 마음까지 얼게 생겼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의 촛불이길 소망해 보면서,   
특히 오늘,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나의 존재를 알리는 편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편지를 하얀 김이 서리는 유리창 앞에 앉아 써 보시면 어떨는지요? 
가을이 간다고, 겨울이 온다고, 꽃이 핀다고, 비가 온다고, 편지를 써 보냈던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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