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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르나?…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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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르나?…③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6.11.04 10:29
  • 호수 11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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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전문가들 도시재생의 중심에 서다

“진정한 의미의 ‘재생’이어야 합니다. 재생은 낡거나 버리게 된 물건을 가공하여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 짓는 게 아니고, 낡은 건물이나 거리가 갖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되살려내는 작업이 도시재생입니다.”

대구시에 있는 (사)시간과공간연구소 권상구(42) 상임이사의 ‘도시재생론’은 논리정연하면서도 확고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죽이는 작업이 아니라 살리는 작업이고, 토목·건축사업이 아니라 문화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구 근대로(露) 활성화의 숨은 주역이며, ‘대구근대골목투어’를 처음 디자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도시재생사업은 철거사업이 아니다. 또 단순히 건물이나 거리의 복원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재생과정에서 물리적 정비가 수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의 물리적 정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작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도심재생은 물리적 변화 뿐 아니라 경제적 재생까지 맞물려야 완성된다. 권 상임이사는 “우선 일본식 건물 등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보존하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도록 해 경제적으로 활성화하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식으로 서서히 변화시켜나갈 때 도심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은 낙후된 구도심 주민들이 사업의 혜택을 피부로 느껴야 하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재활성화 계획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시재생사업은 떠나간 사람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희망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이주한 사람들이 돌아올 만한 요소를 먼저 갖추는 것, 바로 이것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이 필요조건을 충족할 경우 사업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예산만 낭비하는 실패사업이 되고 만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사람들이 왜 떠났는지, 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것으로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사전분석이나 고민 없이 무작정 토목·건축 위주로 사업을 밀어붙이면 이상한 괴물이나 탄생시킬 뿐이다.

▲ 대구근대골목의 물리적 정비는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 짓는 게 아니고, 낡은 건물이나 거리가 갖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이 삼덕상회 건물도 녹슨 함석과 기둥을 그대로 둔 채 안정성 강화를 위한 보강작업으로 리모델링을 마쳤다. 삼덕상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주민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살려내기 위한 것이다.
주민이 먼저 시작한 ‘골목 재생’
대구근대골목은 지난 2006년 민선4기 윤순영 구청장 취임 후 ‘근대문화공간 디자인개선사업’을 통해 본격화 됐다.  
하지만, 주민영역에서는 이보다 15년 앞선 1991년에 이미 골목지도 그리기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첫 시작은 대학생 10여 명의 ‘심심풀이 놀이’였다. 당시 대학생들의 리더 격이었던 권상구 상임이사는 “그때 몇몇 또래 학생들이 중구 안에 의미 있게 놀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순전히 놀 곳을 찾아내기 위해 골목지도 그리기를 시작했다”며 “지나와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대구 근대로 개발의 출발이 되었던 셈”이라고 회고했다.

이때 그려진 지도는 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골목여행의 길잡이로 쓰였다. 이후 대학생들은 입대나 취업 등으로 각자 다른 길을 갔지만, 지도를 찾는 이들은 입소문을 타고 늘어났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2001년, 권 상임이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생겼다. 골목길을 같이 걷던 선배에게서 우연히 정보 한 마디를 듣게 되었고, 그 한 마디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2001년 제가 대구YMCA에서 활동할 때였습니다. 약전골목을 가고 있는데 한 선배가 한약방을 가리키면서 ‘저 한약방이 3대째 이어지고 있어’ 하더군요. 그 순간 눈앞이 환해지면서 모든 게 궁금해졌습니다. 약전골목의 약방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한 골목에 모여 장사를 하게 됐으며, 진골목은 어떻게 형성됐는지, 골목의 역사를 현장에서 직접 접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큰 깨달음을 갖게 된 권 상임이사는 망설이지 않고 대구 문화지도 만들기에 나섰고, 2007년에는 ‘대구신택리지’라는 책자를 발간, 대구 근대골목지도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중구 근대골목은 돈과 쌀이 모이는 부의 거리였고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다. 1905년 일제의 수탈 목적으로 경부선과 대구역이 생겼고, 해방 후에는 사교와 문화의 거리, 1970년대에는 공구골목이 들어서 절정을 이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미공단 섬유업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상권의 변화 등으로 근대골목의 모습은 30년 전에 멈추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이 강조됐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혁신은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혁신은 많은 시민들이 공유하고 집단경험이 동반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구근대골목의 성공적인 변화는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은 저마다 “내가 했다”고 스피커를 틀어댈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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