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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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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은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0.31 14:11
  • 호수 11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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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동/ 목면초 14회 재경동문회 총무

저는 1939년 목면 안심리 마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다가 객지에서 생활하겠다고 1955년 무작정 고향을 떠났는데, 그때 나이가 17살이었지요.
당시 마음속으로 ‘반드시 돈을 벌어 마을에 확성기를 설치해주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1950년대만 해도 출향인 소식이나 마을의 대소사를 주민들에게 전할 일이 있으면, 이장이 징을 울리곤 했는데, 부유한 마을에서는 곧바로 확성기를 통해 방송했습니다. 나도 이런 정도의 앰프시설을 해줄 수는 있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 살기가 많이 좋아지면서 그 꿈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마을회관 부지라도 마련해주고 싶었는데, 이 뜻조차도 모 운수회사에 사업비를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한 자녀교육에도 소홀할 수 없는 입장이라 어느덧 예전에 가졌던 꿈을 모두 접게 된 것입니다.
나이 들어 고향에 들를 때마다 선배님들께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고, 담배도 사다 드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2002년 마을회관 준공식을 가질 때 주민들이 초대해줘 참석했습니다. 그냥 말 수 없어 성의로 30만 원을 전달했고, 2004년 추석 명절때 고향에 다시 들르니 마을회관이 협소한 것을 보고 컨테이너를 하나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객지에서 생활하는 고향 선후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를 ‘시외 전화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22년 전부터 고향 사람끼리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살았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안부를 묻고 지낸 것인데, 나이로는 나보다 8, 9년 선배이고, 학교로는 8년 선배 2명이 있었습니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소식은커녕 수십 년 동안 모르고 살기에 제가 두 분 사이에 다리를 놔드려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한두 번 만나 소주를 기울였는데, 이제는 두 사람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이제 남은 삶을 봉사정신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난 3월 8일 고향과 전국 각 지역에서 생활하는 선후배를 모시고 공주 신관동 ‘그램그램’ 식당에서 만나는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이 자리에 청주에 사는 친구가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후 8월 4일 이 친구와 부여에서 사는 친구를 60년 만에 만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8월 28일에는 공주 그램그램 식당에서 20여 명이 모였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손주들과 벌초하러 고향에 온 선후배와 자리를 함께한 것인데, 오전 11시 30분부터 모이기 시작해 3~4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습니다. 올해 78세의 나이지만,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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