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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영근 열매는 나무가 좇는 꿈 ‘쥐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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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영근 열매는 나무가 좇는 꿈 ‘쥐똥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0.31 14:01
  • 호수 11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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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 나서면 곳곳에 가을이 살짝 들어앉았습니다.
울긋불긋 단풍이 보이고, 낙엽 구르는 소리 우수수 들립니다.
담벼락이나 나무기둥을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의 잎에 물이 들었습니다. 밝은 주홍부터 검붉은 색까지 여남은 가지의 색깔이 햇볕에 더욱 곱습니다.

사무실 입구의 작은 공간에 몇 살인지 모르는 쥐똥나무가 있습니다. 작달만하지만 제법 굵고 단단한 몸통에 옆으로 벋은 가지 수로 보아 나이가 꽤 들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 잎을 내 놓고 꽃을 보여주고 향을 내뿜고 열매를 맺어주며, 자주자주 눈길이 가게 합니다.
나른한 봄날, 식곤증에 자꾸 졸리는 눈을 위아래로 굴리거나 비비적거리며 문 밖으로 나가보면 알싸한 향기가 잠을 쫒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쥐똥나무는 생육조건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랍니다.
키는 작지만 가지를 왕성하게 벋어, 공해가 심한 대도시에서나 맑고 달콤한 공기를 만드는 산길 모퉁이에서나 잘 자랍니다.
겨울을 잘 이겨내고 봄이 되면 사방으로 가지를 무성하게 벋어내지만, 아무렇게나 잘라버려도 잘 자라며 꽃과 향이 좋아 아파트 단지 내 울타리용 나무로는 최고로 칩니다.

5월이 되면 연둣빛 잎 사이로 종모양의 하얀 꽃이 여러 송이씩 모여 핍니다. 4쪽으로 갈라지는 꽃부리 속에서 영그는 향은 어찌나 톡 쏘며 강한지, 맑고 깊은지, 꿀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도 벌들도 잠깐 멈추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워낙 꽃송이가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꽃송이 가까이 눈과 코를 모으면, 꽃은 은근하게 또는 강렬하게 끄는 향과 앙증맞은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보답합니다.
벌들이 윙윙대며 이 꽃 저 꽃으로 옮기면, 꽃들은 출렁대며 더 많은 향을 내뿜습니다.

꽃이 지면 조그만 꽃만큼이나 자잘한 푸른 열매가 맺혀, 여름 한 철을 싱그럽게 하다가 서서히 연둣빛 잎이 주황으로 물들면서 열매도 검은색으로 익어갑니다.
물 든 잎이 다 떨어진 한 겨울에도 까만 열매는 남아 있습니다. 마른 가지에 달린 까만 열매는 마치 쥐똥 같아서, 쥐똥 닮은 열매를 맺는다 하여 ‘쥐똥나무’라 이름이 붙었습니다.
까맣게 익은 열매를 보기 전까지는 이 나무의 이름이 왜 쥐똥나무인지 의아해 하지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 금방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정감 넘치는 이름인 쥐똥나무를 북한에서는 ‘검정알나무’라고 부른답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쥐똥을 닮은 열매를 보고 있자니, 진짜 쥐똥을 본지가 언제 적이었나 가물가물합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시골집 부엌이나 광에서 자주 만났던 쥐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니 쥐똥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을 온통 휘잡고 다니느라 우당탕탕 거리던 소리, 박박 긁는 소리, 쥐덫에 걸려 찍찍대던 소리가 들렸었지요.
어쩌다 광문을 열면 볏짚이나 쌀가마에 앉아, 적개심과 공포심을 가득 담은 까맣고 빠꼼한 눈을 보석처럼 빤짝이며 쳐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다가 후다닥 몸 옆이나 다리 사이로 빠져 달아나면, 쥐보다 더 놀라 나자빠지곤 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초등학교시절의 ‘쥐잡기 강조기간’에는 쥐약을 먹고 죽은 쥐가 몇 마리인지 세어가야 하는 숙제도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진짜 쥐를 생각하게 한 열매를 보며,
나무들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날이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새 잎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들고 열매가 익기까지,
겨울부터 봄‧여름‧가을까지, 철마다 나무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나무 역시 가만히 오래도록 보아야 비로소 나무 안에 담은, 나무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보던 한 그루의 나무도 이 계절이 되면 눈이 황홀하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또한 여기저기에서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색과 빛과 바람소리가 어우러진 탓이겠지요.
 
이제, 온 세상을 푹 물들인 가을빛에
단풍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라 물들어 갑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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