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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사람을 반기는 마중꽃 ‘명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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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사람을 반기는 마중꽃 ‘명자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0.17 13:30
  • 호수 11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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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봄날, 아파트 울타리를 환하게 만들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나무들에게 조그마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푸르고 단단하게 맺힌 열매를 보면서, 그 푸른 열매가 노랗게 익어 가는 것을 몇날 며칠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탓인 냥 온몸을 웅크린 열매가 많습니다. 
노란 바탕에 검은 점들이 군데군데 찍힌 것도 있고, 모양 또한 매끈한 것으로부터 울퉁불퉁한 것까지 가지각색입니다.
나무 밑에 떨어져있는 몇 개의 열매를 주워 베란다에 펼쳐 놓았습니다.
시시때때로 문을 열 때마다 들락날락 바깥공기에 딸려오는 향긋함이 좋아 하는 일 없이 문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합니다.
모과향이나 탱자향과는 또 다른 것이 신선하면서도 은은하면서도 달짝지근합니다.
베란다에서 며칠간 열매가 묵는 동안 명자나무, 키 작은 풀명자나무 열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 년 동안 봄마다 보아온 꽃이 영산홍이 아니라 명자나무 꽃이었습니다.         
이미 수분이 빠져가고 있는, 그래서 더 맑고 신선한 향을 내뿜는 노란열매를 만지작거리며, 꽃을 피웠던 지나간 계절을 생각합니다.
어느 핸가,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에 유독 빨갛게 몸을 두른 꽃나무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명자꽃이라 하였습니다.
무슨 꽃 이름이 50년대 언니들 이름 같으냐며, 온통 심란하게 마음을 빼앗는 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명자나무꽃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서인지 한동안 명자꽃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무슨 기념일이라며 명자나무가 심겨진 조그만 분 하나를 발코니에 놓고 갔지만, 넓고 넓은 하늘 밑이 아닌 탓인지, 햇빛과 통풍이 없던 탓인지, 견디지 못하고 말라 버려 그 꽃나무와는 인연이 없는 걸로 잊고 있었던 명자나무였습니다. 
 

이쪽저쪽에서 봄을 알리는 봄꽃들이 서서히 물러날 때쯤이면,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흰색을 비롯하여 홍자색이나 분홍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으로 은은하고 청순하게 꽃을 피웁니다. 
짧은 가지 끝에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꽃송이가 달려 피며,
주로 진다홍 빛깔의 꽃잎에 황금수술이 다닥다닥 달린 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보는 이의 마음을 밝고 편안하게 해주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은,
몇 발자국 떨어져서보면 마치 조화인 듯하여, 바짝 다가가 꽃을 만져보거나 자세히 들여다보아서야 비로소, 은은한 향을 맡고서야 비로소, 피고 지는 생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이 워낙 아름답다보니, 젊은 여성들이 보면 바람이 난다하여 예전에는 집안에 심지도 못하였답니다.  
 
요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명자나무의 꽃은,
어딘가 모르게 속 깊은 아낙네마음처럼 은근하면서도 고결한 느낌을 주어 아가씨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지역별로 이름도 달라 경기도지방에서는 아가씨꽃으로, 전라도지방에서는 산당화로, 제주도에서는 해당화로 부르기도 합니다. 

더위가 물오르는 칠월쯤이면 가지 끝이 변한 단단한 가시 사이로, 푸른 모과를 닮은 열매가 맺혀 구월이 되면서 황금색으로 익어갑니다.
표면은 비록 우툴두툴하지만 향기는 꽃만큼이나 좋습니다.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를 지닌 열매로 과실주를 담기도 합니다.
옛 어르신들은 명자열매를 옷장에 넣어 두고 벌레나 좀이 생기지 않도록, 옷에서 은근한 향기가 퍼지도록, 방향제로 사용하였습니다.
       
장미처럼 날카로운 가시는 있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고, 신뢰라는 꽃말을 지닌 명자나무.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향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몇 알의 열매를 보며,
이 열매 나무의 ‘신뢰’와 김영란법의 ‘신뢰’를 생각합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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