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싸목싸목 아름다움으로 흘러가는 계절 ‘추분 절기’
상태바
싸목싸목 아름다움으로 흘러가는 계절 ‘추분 절기’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09.26 15:24
  • 호수 116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손바닥으로 새알을 굴려 빚어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입술을 붙인,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듯 옥 젓가락으로 달아 올리던 맛깔 나는 송편(방랑시인 김 삿갓의 송편예찬)과 잘 달궈진 번철에서 익어가는 부침거리의 지져지는 소리로 맞이했던 명절,
밥상머리에 둘러 앉아 함께 숟가락을 들며
매번 보는 달이라도 항상 처음인 듯이 보름달을 기다렸던 명절 추석을 보내고,
감동과 눈물의 리우 패럴림픽을 보내니 훌쩍 가을이 온 것 같습니다.

빗방울이 솔잎 끝에서 아롱거리는 우(성)산에 올라,
너그러운 능선과 어우러져 있는, 연두가 노랗게 변해 가고 있는 동쪽들판을 봅니다.
반듯반듯한 사각의 틀 안에 꽉 들어찬 벼의 모습은 무더웠던 여름을 잘 견뎌준 노랑이라서 더욱더 어여쁘게 빛이 납니다.
가물어서 독버섯도 구경하기 힘들다고 하더니, 지난 하루 내린 비로 촉촉한 솔가리를 뚫고 어린 독버섯이 자잘하게 나왔습니다.
 봄내 뽀얗던 밤꽃이 이토록 큰 밤송이를 키우다니, 밤나무 된비알 숲을 올려 보며 내려 보며, 걷다 멈추기를 반복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아람이 벌어지는 모습 보이고,
툭 투두둑 숲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 사이사이로 알밤 떨어지는 소리 들리기 때문입니다.  
나무둥치에는 채 익기도 전에 떨어진 불밤송이가 까맣게 말라가고 있는데도, 밤송이가 워낙 많이 매달려 나뭇가지는 축축 늘어졌습니다.
커다란 복숭아가 달려있는 것처럼 유난히 큰 밤송이를 볼 때마다 입이 벌어집니다.    
굵은 알밤이 빠진 채 나무에 매달려있는 빈 밤송이를 봅니다.
알밤이 있던 미끈한 자리,
하얀 꽃이 활짝 핀 것 같은 알밤의 집.
온 힘을 다해 그 큰 밤들을 키워내느라, 떨구어 내느라 힘이 쏙 빠진 모양입니다.  

     
인가가 없는 숲길에도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반짝이는 햇살로 더 노란 호박꽃은 워낙 부지런하여 새벽 일찍부터 피어서인지 벌써 꽃잎을 닫고 있습니다.
시장 입구에서 보았던 동그란 애호박들이 언제 저렇게 크고 누렇게 자랐는지, 겉이 단단하고 씨가 잘 여문 늙은 청둥호박이 되어 길게 누워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 봅니다.
고라니가 산밭을 헤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조망 위로 솜털이 송송 박힌 하얀 박꽃이 조그맣게 피었으며, 잘록한 허리와 자잘한 털이 몸 전체를 둘러싼 귀여운 조롱박도 조롱조롱 열렸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호박꽃과 조롱박을 이렇게 호젓한 산속에서 보니 홀딱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박과 식물의 꽃은 대부분 노란색이지만 박은 일부 야생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흰색으로 피며, 황혼 무렵 피는 꽃은 다음날 아침에 시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산속 그윽한 곳에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이 길을 걷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줄 박꽃의 덩굴손이 옷자락을 당기는 듯합니다.  
 

점점 낮보다 밤이 길어지지만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좋은 시절입니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가을걷이의 절기로
맑고 푸른 하늘에 그림 같은 구름이 흐르는 것을 보며
몽실몽실하게 퍼지는 목화를 따고, 호박고지와 박고지와 고구마 순을 말리는 계절입니다.
길가 열어놓은 대문 사이로 둥근 채반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는 호박과 가지의 하얀 속살이 눈부십니다. 
벌레가 숨는 계절,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여겨지는 별 노인성(老人星)에 제사를 지내어 세상이 편안해지게 하는 계절입니다.
재물이 많아지고,
노란싸리버섯과 초록호박이 어우러진 버섯요리를 먹는 계절입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