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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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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09.05 11:24
  • 호수 1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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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은 나의 친구…김보화 / 변호사

얼마 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택시를 몰던 기사가 심장마비 증세로 정신을 잃었는데 택시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아무런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떠난 뒤, 다른 시민의 신고로 택시기사가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를 두고 승객들에 대한 처벌요청과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승객들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형법상 처벌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유기죄’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법률상 또는 계약상 구조의무 있는 자의 구조불이행만을 처벌하고 있어 위 사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편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여행하다가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길에 쓰러지게 되는데, 사회의 최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구하지 않고 지나쳤지만 유대인과 적대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를 구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 이야기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비록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도덕적 견지에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 일명 구조 불이행 행위를 죄로 인정하여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조불이행 죄 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 최근 우리사회의 방관자 효과 팽배로 인한 최소한의 윤리성과 사회연대성의 상실을 걱정하는 이들은 해당 법제화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도덕의 법제화에 따른 자율성 침해 및 국가·사회 본연의 의무를 개인의 책임문제로 전가시킬 우려, 구성요건의 불명확성, 외국에서도 실제 처벌사례가 거의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법제화를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높습니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유럽 14개국 이상, 미국 뉴욕주 등 31개주 이상에서 ‘구조불이행 죄’를 형법에 도입하여, 사고 또는 공공의 위험상황에서 타인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벌금 내지 구금(징역)형을 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64년 뉴욕 주 킨스에서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귀가 중 강도를 만나 구조요청을 하였음에도 범행이 계속된 35분 동안 38명의 목격자가 이를 방관하여 결국 살해당한 사건 이후 법제화가 추진된바 있습니다. 한편, 북한에도 위와 같이 죽을 위험에 처한 타인을 신고 및 구조하지 않아 죽게 하면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에 처하는 법규정(제5차 개정 형법, 제277조)이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구조불이행 죄’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있었습니다. 2010년 10월 1일 제18대 국회에서 임동규 의원 등 11인은 ‘긴급한 사정으로 생명·신체에 위험을 당하여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하거나 관계 기관에 신고하지 아니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으나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2012년 임기만료로 폐지된바 있습니다.
다만, 최근 박성중 의원 등 16인이 2016년 6월 24일 위와 유사한 내용(자기 또는 제3자의 생명·신체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구조하지 않아도 벌하지 아니하는 처벌예외조항이 추가됨)의 개정안을 상정하여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입니다.
 
흔히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합니다. 모든 비도덕적 행위를 처벌 할 수는 없으며, 도의적 비난과 법적 비난은 분명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과 도덕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현재 우리사회는 위 택시기사 사건을 계기로 그 경계설정에 대한 논쟁이 한창 무르익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논의되어 오던 위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담은 답이 이번에는 기꺼이 도출될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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