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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물맞이 ‘유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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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물맞이 ‘유두절’
  • 김현락 재능기부
  • 승인 2016.07.25 16:57
  • 호수 11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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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하지에서 추분까지, 6월에서 8월까지, 입하에서 입추 전날까지가 여름을 가리키는 기준입니다.
여름의 시작과 끝은 24절기와 기상학과 천문학에 따라 다르지만, 그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만은 같습니다.
소서로 시작하여 대서, 초복과 중복까지 들어 있는 이 7월의 하순은 “덥다, 더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초여름의 풋더위가 밀려올 즈음, 먼발치에서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흰 꽃 무리를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한 송이 한 송이 들여다보니 자잘하게 핀 꽃이 모여 한 덩어리의 꽃송이를 이루고 있는 당근꽃이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이유를 빼고는 단번에 사람의 손길이나 눈길을 끄는 식물이 아니고 보니, 뿌리에 비하여 씨를 받기 위한 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날비와 장대비가 몇 차례 다녀가고, 절기 또한 몇 번 바뀌었으며,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들이 많아지자 지난번에 본 당근꽃이 생각납니다.
꽃이 예쁘기도 하였지만, 당근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수확을 할 때는 지났는지, 두루두루 궁금하여 벽천리 당근밭을 찾아 갔습니다.
연초록 계절에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들던 꽃송이는 이미 자취도 없고, 땡볕에 마른 풀 줄기만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당근의 마른 줄기 사이로 남아있는 연한 새 줄기와 잎에서 특유의 향이 올라옵니다. 셀러리보다는 연하지만 미나리보다는 진한, 쌉싸래하지만 맑고 밝은 향입니다.
밭고랑 여기저기에는 주황색 알뿌리 대신 과일조각 몇 점이 놓여 있습니다.
 
여름 중의 여름, 그 중에도 한 복판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초복과 중복 사이, 달력에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 ‘유두’는 음력 6월 보름날로 신라 때부터 이어진 여름풍속 중의 하나였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동류수두목욕’의 줄임말이기도 합니다.
 
이 날 전국 방방곡곡의 계곡에서는 남녀노소가 모여 맑은 물에 머리를 감고 폭포수에 몸을 맡기며,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나누어 먹는 유두잔치를 벌렸습니다.
물가에서는 시를 읊고,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풍류도 잊지 않았던 선조들의 여름나기였습니다. 
유둣날을 시원하게 보내면 여름동안 더위를 먹지 않고 여름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삼복은 속절(俗節)이요 유두는 가일(佳日)이라
원두밭에 참이 따고 밀 갈아 국수 하여
가묘(家廟)에 천신(薦新)하고 한때 음식 즐겨보세
부녀는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디디어라 유두곡을 치느니라”
- 정학유 ‘농가월령가’ 중 유월령‘

이 땅에서 생겨난 한민족 고유의 풍속이었던,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의 유두 물맞이는, 그냥 찬물에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쫒는 일종의 정화 의식이었답니다.
물맞이 뒤엔 햇과일과 밭작물로 만든 밀국수와 밀전병으로, 조상에게는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유두천신’이라는 고사를 지내고, 농가에서는 농사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도 지냈습니다.  

당근밭에서 만난 유두천신,
당근을 심은 할머니는, 그의 할머니의 할머니, 역시 그의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워 온 집안의 풍습대로 밭고랑에 작은 고사를 지내신 것이었습니다.
내년, 아니 초겨울에 수확할 잘생기고 빛 고운, 아삭거리는 식감을 맛보게 해 줄 당근의 풍년을 위해서요.

이웃들과 어울려 양기가 왕성한 동쪽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쳐 버리고,  술 마시며 놀면서 더위를 물리친다는 유둣날.
밀떡을 부치고 정갈한 음식물로 제를 지내던 유두절은,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점차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물맞이에서 물놀이로, 물놀이에서 여름 바캉스로 변하여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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