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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말 고개는 목빈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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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말 고개는 목빈고개였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05.16 10:37
  • 호수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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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서울시 금천구(장평면 적곡리 출신)

요즘은 산업화와 대중교통의 발달로 산 밑으로 터널이나 직선도로가 생겨 옛 길이 대부분 없어졌지만, 우리 청양 칠갑지맥엔 고개가 참 많았다. 고개란 산 능선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으로 자동차나 사람들이 걸어서 넘기 쉬운 단거리 길을 말하는데, 우리말 용어 중에 고개를 일컬어 령(嶺), 재, 현(峴), 치(峙), 티로 다양하게 불리고 대부분은 거기에 얽힌 전설이 있게 마련이다.

청양엔 칠갑산, 백월산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없으나 제일 큰 한티고개를 비롯해 미당의 문드래미고개, 새울고개, 수리너머 고개, 도림(북실)고개, 마재(마티)고개, 돌말(도장)고개, 배나미고개, 백토고개 등이 있다.

문드래미고개는 필자의 고향인 장평 적곡리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그 고개에 서울 가는 첫차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미당 차부까지 줄달음질치기도 했으며, 새울고개는 중학교 시절 지각을 면하기 위해 질러 다니던 고개로 친구들과 함께 보리서리를 했던 추억이 있다. 수리너머고개는 우리 형이 장평국민학교 다닐 때 6년을 넘었고, 내가 간혹 은곡리 39번국도 신작로를 닦으러 동리 어른들과 함께 다녔던 길인데, 지금은 도림저수지에서 수로를 따라 은곡리로 물이 넘어간다. 또 마재는 산적말이라고도 하는데 산적이 살았다는 옛 이야기가 있으며, 백토고개는 소사천에서 대사천으로 넘어가는 곳으로 흰 빛깔의 흙이 나오고 흰 호랑이가 있었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부여 규암에 가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걸어 다녔던 고개이다. 때론 모시 팔러 은산장에 갔다 늦게 오시는 어머니를 등불을 들고 마중 나갔던 곳이기도 하다. 배나미고개는 소사천에서 은곡리로 넘는 고개인데 천지개벽 시 배가 넘는다는 전설이 있다.

돌말고개는 돌말에서 사천으로 넘는 고개인데 목빈(목을 벤)고개라고 불렀다. 목빈고개는 장평면 적곡리 돌말에서 소사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드라마 징비록에서도 언급된 조선시대 이몽학의 조상 묘가 있던 곳(도장고개 아래 움푹 들어간 부분)으로 이몽학이 붙잡혀 죽은 뒤 묘지의 목이 되는 이곳을 잘랐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청남면 아산리 남쪽에 있는 들이 이몽학이 선조 29년(1596) 7월 난을 일으켜 홍산, 정산, 청양을 함락시킬 때 진을 치고 군대를 훈련시켰다는 곳이고, 원촌 방죽 바로 위에는 그의 집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문드래미고개는 공주-서천을 잇는 고속도로가 나고, 마재엔 터널이 뚫렸으며, 도장고개와 백토고개도 포장이 되어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소백산 가는 길에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는 죽령 옛길을 걸어 보았다. 최근에도 이곳저곳에서 작은 고개는 허리를 자르고 높은 고개는 밑으로 곳곳에 터널을 뚫어 옛 추억이 깃든 고개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짬을 내 뜻이 담긴 지명의 옛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며, 칠갑산 한티재 옛길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꾸고 보존하여 관광상품화 하는 것은 어떨지 고민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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