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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청양읍 교월리 김순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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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청양읍 교월리 김순덕 씨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6.03.21 14:08
  • 호수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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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웃음이 제 행복지수 높여요”

오늘의 주인공은 김순덕(54·청양읍 평촌1길) 씨다. 그는 참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평생학습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더 바빠졌단다. 하지만 바쁜 만큼 하루하루가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전한다.

부모 봉양하며 4-H 활동 적극
운곡 모곡리가 고향으로 8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사랑 속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는 4-H 연합회 부회장까지 지낼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젖소도 직접 키우는 등 촉망받는 농군으로 생활했었다. 또 막내딸이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면서 어머니를 도와 농사도 지으며 바쁘게 지냈었다.

▲ 난타를 배우며 메모 습관이 생겼다는 김순덕 씨. 그의 노트에는 온통 난타 관련 내용들로 가득했다.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셨고, 특히 아버지께서는 목수 일도 병행하셨었어요. 그런데 건강이 안 좋으셔서, 제가 어머니와 함께 돌봐드렸죠. 그러면서 한우와 젖소를 키웠습니다. 사실 농업후계자 영농자금 지원 초창기에 저도 신청했었는데, 지원을 못 받았죠. 그래서 몇 마리만 키웠었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면서 4-H 활동과 농사·축산을 겸하며 생활하던 그는 20대 초 국종덕(59·청양군 지역경제과장) 씨를 만나 4년 열애 끝에 1986년 결혼하게 된다. 국 과장은 비봉면 중묵리가 고향으로 7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으며, 당시 운곡 농촌지도소에 근무했었다.

“당시에는 읍면마다 지도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4-H 활동을 했고 그러다 남편을 알게 됐죠. 시댁이 부자였다면 결혼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농사는 지으셨지만 크게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그런 점들이 부담이 덜 되더군요. 저희와 비슷하다고 생각됐죠. 특히 남편이 말은 없는데 자상하더군요.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결혼 패물 대신 젖소 구입
이후 김씨는 시댁에서 8개월 동안 지낸 후 다시 남편과 함께 운곡 친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뜻한 바가 있어서였다. 
“남편도 공무원 초년생이고 저도 직장이 없을 때 결혼해서 어려웠어요. 신혼집은 꿈도 못 꿨죠. 그래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으로 친정으로 간 것입니다. 사실 결혼할 때 남편과 상의 해 패물 대신 젖소 5마리를 구입했는데, 축사가 친정에 있었거든요. 이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남편도 퇴근하면 팔 걷어 부치고 일을 도왔고요.”

이렇게 7년 후 이들은 집을 마련해 청양읍내로 나왔다. 또 김씨는 읍내로 나와서도 시간제부터 월급을 받는 직장까지 다니며 바쁘게 생활했다.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궂은 일 많이 안한 것 같다’고 하세요. 체구도 작고 일도 못하게 보이나 봐요. 하지만 제 손을 보시면 그런 말씀 안하시죠. 둘 다 빈손으로 시작했고, 아이들이 셋이니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평생학습교육으로 새 삶 시작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청양군에서 운영한 평생학습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교육을 받은 것이다.     
“2002년에 남편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다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저희 가족들이 힘들었어요. 저도 물론 그랬고, 그렇다보니 혼자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더 바쁘게 하려고 저녁에 교육을 받았습니다. 웃음치료 등 가능한 즐거운 수업만 들었죠. 그러다 라인댄스, 레크리에이션, 요가는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답니다. 또 이를 이용해 일자리도 얻었죠. 지역 어른들에게 라인댄스를, 요즘은 대치면주민자치센터에서 3년째 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학습을 만나면서 새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가진 능력을 지역민들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하다고도 말한다.
“제가 공부는 안 좋아하는데 강의 듣는 것은 좋아해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요. 평생학습도 그런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제 자신 뿐 아니라 어르신들이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더군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난타를 만난 건 더 큰 행운
특히 그는 6년 전 청양고추구기자 축제장에서 만난 칠갑타악퍼포먼스의 음악난타 공연이 자신의 인생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줬다고 말한다.
“난타를 보는데 이거다 싶더군요. 이후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는지 수소문했고, 팀원이 됐죠. 활동하는 팀원 중 가장 늦게 합류했을 거예요. 또 제가 음감이 없어서 처음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도 강사인 강경예 선생님이 꼼꼼히 가르쳐주셨고, 저도 열심히 연습했죠. 그러다보니 조금씩 몸에 익게 되고, 공연에도 참여하게 됐죠.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난타를 시작한 그는 이제 주민들에게 난타를 가르치는 지도 강사 역할도 하고 있다. 바우처 사업 일환으로 진행되는 ‘한국 음악의 큰 울림 사업’에 강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했고, 현재 대치면 수석리와 시전리 비끼내, 청양문화체육센터에서 어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망설였어요. 가르칠 용기가 없어서요. 그런데 강 선생님이 용기를 주셨어요. 또 어른들이 행복해 하시고, 그 모습을 보니 저도 행복해 지면서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한번 구경 오세요. 정말 즐겁게 하십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김씨는, 50대인 지금이 30, 40대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행복은 계속될 것 같다고도 전한다.
“난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에요. 그리고 교육이 대부분 저녁시간에 이뤄지는데 남편이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했어요. 묵묵히 지원해 줬습니다. 정말 감사하죠.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특히 2012년에 남편이 큰 수술을 했었어요. 지금은 건강해졌습니다. 어쩌면 그것을 계기로 우리 가족 모두 건강을 더 챙겨보는 기회가 된 것도 같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건강 챙기면서 즐겁게 생활하면 좋겠어요.”

그는 94세인 친정어머니와 남편인 국종덕 과장, 그리고 지난해 포천시청 환경직 공무원이 된 큰딸과 공부하고 있는 둘째 딸, 군인인 아들 등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이 가장 큰 바람이란다. 그리고 난타를 배우는 어른들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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