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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공부에 푹 빠진 만학도 김광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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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공부에 푹 빠진 만학도 김광순 씨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6.01.25 10:12
  • 호수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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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포기하면 결국 아무 것도 못해요”

오늘 만나볼 이웃은 김광순(58·벽천보약원) 씨다. 그는 환갑이 코앞이고 어린 손자들도 여럿 있는 할머니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여건만 된다면 나이가 더 들어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도 전한다. 만학도 김광순 씨를 만나봤다.

장녀라는 부담감 컸다
갑작스런 한파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날 김씨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남편 민윤기(65) 씨와 함께 운영하는 보약원에서, 땀까지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를 보자 손님이 온 김에 좀 쉬어야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7남매 중 장녀인 그는 초등학생이었을 때 부모가 학교 앞에서 가게를 운영했으며, 아버지는 읍사무소 기능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해 곳곳을 돌아다녔고, 때문에 어머니가 생활을 꾸려갔다고 말했다. 

“택시사업을 하셨는데 잘 안됐던 것 같아요. 결국 어머니께서 빵장사로 생계를 꾸리셨죠. 하지만 당시에는 할머니와 저희들까지 가족이 많았으니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수업료 못낸 사람 명단에는 항상 제 이름이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렇듯 어려운 가정형편을 보면서 그는 장녀로서 큰 부담감을 가졌고, 결국 자퇴서를 낸 후 직업전선에 나서게 됐단다.
“어머니께서 글을 모르셨어요, 그래서 자식들만큼은 꼭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하셨죠. 하지만 생활이 어려우니 마음처럼 안됐죠. 특히 전 장녀라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 공부에 취미도 없었던 것 같고, 이렇게 어려운데 공부해서 뭐하나 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할머니께 돈 벌어다 드릴 테니까 학교 좀 그만두게 해달라고 졸라서 자퇴를 했습니다.”

“정말 억척스럽게 일했네요”
이후 그는 어머니가 장사하던 곳 근처에 있던 충남교통을 찾아가 ‘매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16살 때였다. 이에 충남교통에서는 당찬 여학생의 요청을 받아줬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고, 1년여 매표 일을 한 후 시외버스 안내양으로 옮겨 5년 여간 근무했다.
이렇게 일을 해 받은 월급으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다. 장녀로서의 책임을 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평생의 동반자도 만나게 됐다. 

“남편은 농사지으며 기사로 근무했는데 그냥 좋더군요. 그래서 제가 사귀자고 해 결혼까지 했죠. 22살 때였어요. 둘 다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손으로 시댁에서 살림을 시작했죠.”
결혼 후에도 이들은 열심히 살았다. 민씨는 용달사업을 하다 보약원을 시작했다. 김씨는 요구르트 배달부터 슈퍼운영, 달걀 판매, 식당운영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열심히 산 것 같은 데 결혼 할 때도, 4년 간 시댁서 살다 분가할 때도 빈손이었어요. 나가는 곳이 많아서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했죠. 물론 자본이 없어서 항상 남의 돈을 빌려서 무엇인가를 했어요. 그러다 식당을 하면서 생활이 좀 나아졌죠. 식당은 3년 정도 했고, 다음부터는 다 정리하고 남편을 도와 보약원 일에 전념했어요. 정말 억척스럽게 일했네요.”

이제 이들은 청양시장 안에서 보약원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도 어림잡아 30년은 된 것 같단다. 하지만 아직도 월세를 내고 있다고 전한다.
“보약원에서 큰돈을 벌지는 못해요. 현상 유지죠. 제 양심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덕분에 돈은 못 벌어도 단골손님들은 많습니다.”

인터넷 강의로 공부 시작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공부에 취미가 없어 자퇴서를 냈다는 그. 하지만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39년 만인 55세 때였다.
“여건만 되면 다시 공부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삶이 바빴고, 특히 보약원을 하면서는 손님이 수시로 드나들어 낮 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러다 인터넷 강의를 알게 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나이도 먹고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참 힘들었어요.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렸으니까요. 남편은 더 고생했어요. 가게에 있는 방 한 쪽에서 새벽마다 불 키고 컴퓨터 켜놓고, 스피커로 강의를 들어서 시끄러웠으니까요. 나중에 아들이 이어폰을 사다 줘 시끄러운 것은 없어졌지만 불빛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공부한 그는 2013년 4월과 8월 중졸·고졸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어 그는 대학과정에도 도전해 2015년 8월 28일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행정전문학사(사회복지)를 취득했으며, 이로써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얻기도 했다. 또 한문 4급 시험에도 합격했다.
“시험접수를 하러 갔는데 교육지원청 직원이 어디서 공부 하냐고 물어, 집에서 요 했더니 대단하다고 말하더군요. 또 딸이 이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며, 미리 준비 못해드려 죄송하다고도 하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공부하기 싫다보다 너무 어려워서 엄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내 손이 가야 뭐가 될 것 같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사니까요. 장녀로서 노파심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용기 준 모두에게 ‘정말 감사’
공부를 시작할 때쯤 그는 갱년기를 겪었다. 대부분 여성들이 갱년기를 힘들게 보내지만, 그는 ‘하늘이 주신 영광의 갱년기’였다고 전했다. 덕분에 새벽에 일찍 깨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힘내라고 용기를 준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크단다. 특히 열심히 하라고 간식을 챙겨주고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장하다며 금반지 선물까지 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는 꼭 써달란다. 

“가족들은 물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건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또 친구들과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는 앞으로 사회복지사 1급에도 도전할 계획을 전했다. 2월 27일에는 한문 3급 시험, 4월 2일에는 요양보호사 시험도 예정돼 있다. 영어, 컴퓨터도 잘 하고 싶단다.  

요즘도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는 김광순 씨는 민윤기 씨와의 사이에 경혜(백세김 근무)·경일(청양군 기획감사실 근무)씨를 두고 있으며, 두 자녀 모두 가정을 꾸리고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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