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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취재] 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 ‘슬로시티’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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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취재] 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 ‘슬로시티’ ④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5.11.23 09:39
  • 호수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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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슬로시티 발상지 ‘오르비에토’를 찾아서

오르비에토 슬로시티 추진 배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에 있는 오르비에토시(市)는 로마와 피렌체의 중간에 있는 이탈리아의 농업도시이다. 로마 북쪽으로 약 120㎞ 거리에 있으며, 해발 195m 정도의 바위산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인구 2만1000명(시내 5000명, 시 외곽 1만6000여명)의 소도시로 중세시대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고 900년 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구름이 낮게 깔리기라도 하면 마치 하늘에 둥실 떠있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고대 에트루리아왕국 이래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 ▲국제슬로시티의 발상지 오르비에토는 해발 195미터 바위산 위에 형성된 중세 도시이다.
오르비에토는 지난 1999년 슬로시티 선포 이후 ‘슬로시티 국제연맹’ 본부가 자리 잡게 된 슬로시티 운동의 발원지이다. 슬로시티를 선포한 배경은 첨단화, 일상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삶보다 인간답게 사는 마을이 되기 위함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중부 지역인 주그레베 인 키안티, 브라, 포지타노 등지와 함께 지방 세수의 한계를 겪던 오르비에토는 대규모 하드웨어적인 사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슬로시티라는 소프트웨어적인 개념을 통해 주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게 됐다.

▲ 900년 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오르비에토 중심부는 슬로시티 확산을 위해 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슬로시티를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 
오르비에토는 고대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사람들이 기거해 온 지하 동굴이 많아 도시 전체의 기반이 흔들릴 위험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시 정부는 슬로시티 운동 시작과 함께 차랑 통행을 우선 제한하고 퍼니큘러라 불리는 궤도열차를 이용해 도심에 진입하게 했다. 또 도심 안에서는 전기버스로 이동하게 했으며, 도심 외곽에 있는 주차장이나 지하주차장에서는 도시 중심부까지 무빙워크(에스컬레이터)를 활용하게 하는 등 편의성을 높였다.
오르비에토의 쾌적한 환경 유지 정책은 눈여겨볼만하다. 외곽 저수지에서는 대체에너지인 수소에너지를 생산해 화석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또 도시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중세도시의 기분을 느끼도록 엄격한 간판 규제를 시행, 병원이나 약국 같은 사회적 필수 시설의 간판을 제외하고는 네온사인을 사용할 수 없다.
시 정부는 슬로라이프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으며,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제과점, 수공예점, 가구점, 세라믹(도자기) 가공업소 등 전통시장을 유지함으로써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특산품만을 판매하게 하고 작은 음악회 등을 개최해 주민과 관광객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추구하는 한편 도심 내 광장을 활용해 주 2회 재래시장을 열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은 재래시장을 거쳐 가정, 학교, 레스토랑 등에 납품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통적 낮잠(오후 1시~4시)인 ‘시에스타’와 저녁 산책(오후 6시~8시)인 ‘파세쟈타’를 지키는 오르비에토 사람들은 방문객들에게 느림과 여유, 교감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 풍성
오르비에토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화이트 와인의 대표 산지이다. 생산지와 같은 이름을 쓰는 ‘오르비에토’ 와인은 이 지역 농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도심 외곽에는 와인리조트, 포도 농장 등이 즐비하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오르비에트의 상징인 두오모 광장과 대성당은 ‘볼세나의 기적’으로 불리는 13세기 성체포(聖體布)가 보관하고 있다. 1370년경 완공된 두오모 성당은 석회암과 현무암이 줄무늬 형태로 보이도록 디자인돼 건축학적 가치가 높고 이탈리아의 고딕 건축을 대표하고 있다. 내부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또 16세기 교황의 지시로 파게 된 깊이 62m의 성 파트리치오 우물이 깊이 모를 역사를 대변하고, 지하도시는 터키의 카파도키아만큼이나 신비로움과 놀라움을 안겨 준다. 별도의 투어가이드 없이 출입이 불가능한 이 지하도시는 현재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무려 3000년 전부터 사람이 기거해 온 이 지하도시는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연합취재단 고양·태안·한산·청양신문 이진수기자>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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