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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농·식품 6차 산업으로 억대 연봉 올리자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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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농·식품 6차 산업으로 억대 연봉 올리자 ⑩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5.10.05 11:28
  • 호수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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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 우수사례…사계절 호박냄새 나는 ‘참샘골호박농원’

충남도 곳곳에서 6차 산업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례를 둘러본다. 이를 통해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잘사는 농촌의 미래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어내야 했는지도 알아본다. 이번 호에는 호박 생산부터 가공·체험·관광까지 6차 산업화를 통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참샘골호박농원’(대표 최근명·62)을 소개한다.

[글 싣는 순서]
1. 남보다 먼저 도전 고소득 자리매김(1~3)
2. 타 지역 6차 산업화 우수사례(2-7)
- 서산시 대산읍 운산나루터길 ‘참샘골호박농원’
3. 군내·외 6차 산업화 우수사례를 통해 본 청양군의 나아갈 길

▲ 최근명 대표
4전 5기 의지의 농업인
참샘골호박농원(이하 호박농원)은 황토맷돌호박(늙은호박) 생산부터 가공·유통·체험까지 6차 산업화를 통해 2014년 기준 연 5억 매출을 올린 곳이다.
마을주민들과 상생하며 ‘체류형 체험농장’ 100대 스타 팜에 선정되는 등 성공한 6차 산업화 농장으로도 곳곳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덕분에 이곳을 이끄는 최 대표 또한 성공사례 강사 섭외 1순위로 초청받는 등 바쁘다. 하지만 그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내야 했다. 네 번 도전해 실패했고, 다섯 번째 도전해 성공한 4전5기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도전은 낙농업이었다. 한 농민이 젖소 3마리에서 우유를 짜는 모습을 보고서다. 또 그 수입으로 중·고등학생 2명의 자녀를 가르친다는 말에 자신도 도전했다.
“제대 후 인근 목장에 취업해 3년 동안 기술을 배웠고, 2000만원을 모아 젖소 다섯 마리를 사 낙농을 시작했죠. 그 때가 1980년, 27살 때였어요. 이후 10여 년 동안 50마리까지 늘렸고 하루 300kg의 우유 생산 등 호황을 이뤘지만 1990년대 우르과이 라운드에 따라 분유 등이 수입되면서 우유 산업이 끝났다고 생각돼 정리했습니다.”

두 번째는 토종닭 사육이었다. 망을 치고 방사해 5000수까지 사육했고, 냉동 닭으로 만들어 대형마트에 유통했다. 하지만 여름에 호황이던 닭은 겨울이 되며 주문이 줄었고, 결국 매출은 끊겼는데 사료 값은 오르는 등 버틸 수가 없어 1년 만에 접었다.

세 번째는 왕 우렁이 양식이었다. 우렁이 살을 빼 100g씩 냉동 포장해 된장찌개용으로 판매했다. 하지만 이것은 겨울철은 호황이었고, 봄에 줄기 시작해 여름이 되면서 주문이 끊겼다. 결국 이것도 1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는 느타리버섯으로, 1993년 주민 7명과 작목반을 구성해 시작했다. 이후 2~3년 동안은 생산·유통이 잘 됐다. 하지만 버섯 끝이 노랗게 변하는 연작피해를 입게 돼 접었다.
이처럼 그의 4번 도전·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산은 성공했지만 유통에 실패한 것이다.

‘전국최초 상온 장기 저장법 개발’
이후 그는 농촌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건진 느타리버섯 20상자를 들고 서울로 갔다. 직업을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락동 경매 시장을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늙은호박을 만났다. 7월이었다. 더군다나 가격이 한 통에 2~3만원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에 그는 농촌에서는 흔한데 왜 이리 비싼지 물었고, 저장이 어려워서라는 답변을 듣게 됐다. 
“순간 사랑방 시렁처럼 생긴 버섯 재배 균상이 환기가 잘되니 그것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시골로 와 1996년부터 호박 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 한 고객이 NFC를 활용해 호박농원을 검색해보고 있다
호박농사를 짓는 데에도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저장이 쉽지 않았고, 때문에 2000통을 썩혀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 끝에 늙은 호박 상온 장기 저장법을 개발해 10%에 그쳤던 저장율을 80%까지 올렸다. 전국 최초였고, 이것으로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또 4전 5기를 뒤돌아보면서 농사만 지어서는 한계가 있으며, 새로운 유통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안 중 하나가 온라인 마케팅이었고, 홈페이지를 개설 운영을 시작했다.

“4번 모두 유통에 실패했잖아요. 그래서 유통을 배웠고 1999년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2000년 1월부터 전자상거래를 시작했죠. 그런데 정말 어느 날 새벽에 호박 한 통이 전자상거래로 주문이 들어왔더군요. 한 통이었지만 놀랐고 감격했죠. 그렇게 시작해 현재까지 온라인과 모바일로 100% 직거래 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는 판매 하지 않아요.”

그는 농업 성장의 주 요인은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정해져야 한단다. 물론 이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에 그는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여기에 호박농원을 붙였다. 이렇게 ‘참샘골 호박농원’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호박만으로 연 5억 매출
전자상거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가공 상품도 개발, 판매를 시작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와 있던 한 고객의 글을 본 후다.
“‘호박 요리 힘들어요. 음료로 만들어 주시면 안되나요’라는 글이었어요. 그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공을 시작했죠. 특히 가공사업을 추진하면서 서산시로부터 특화사업 지원을 받아 자동화 시스템 생산설비도 마련했고, 이것이 6차 산업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 최 대표가 호박 저장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참샘골에서 출시한 첫 번째 가공품은 호박즙인 ‘호박미인’으로, 그는 특허 등록 후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어 방부제 없이 생 호박과 고구마를 갈아 열전처리 한 고구마호박죽을 출시했다. ‘아침 굶지 마세요’라는 문구로 홍보했고, 바쁜 직장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단다. 고구마호박죽은 식약청으로부터 소규모 해썹(HACCP)인증은 물론 충남도지사의 Q마크 인증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 나온 제품이 2013년 특허청에 상표출원 한 ‘호박손 달인물’이에요. 처음에는 호박손으로만 팔았는데 고객들이 간편한 것을 좋아하셔서 만들어 봤죠. 소비자들께서 먹고 난 후 임산부 배 뭉침 예방에 좋다고 카페에 후기를 올려놓으면서 인기가 더 좋아졌어요. 충남농업기술원 창의적 손맛 사업화에 선정돼 나온 상품입니다.”

참샘골에서는 늙은호박 뿐 아니라 앞서 설명한 가공품을 포함해 총 20여 가지 제품을 판매한다. 특히 호박을 활용한 즙·죽·달인물 등 주력상품만으로 2014년 기준 연 5억 매출을 올리면서 6차 산업화 성공 주역이 됐다.
“홈페이지 운영 전에는 호박만으로 연 15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어요. 또 홈페이지 제작 초기인 2000년에는 가입 고객이 약 200명에 불과했죠. 하지만 가공품 출시 및 판매 등 6차 산업화하면서 회원이 2만 여명으로 늘었어요. 또 6차 산업화하면서 홈페이지에서 쇼핑몰로 변경됐고, 덕분에 지금은 호박만으로 연 5억 매출을 올리고 있죠.”

체험으로 마을 소득도 높여
호박농원에서는 2004년부터 체험도 시작했다. 역시 고객이 올린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농장에 가서 호박 따기 체험을 해 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보고서다.
“한 부부가 글을 올리셨더군요. 그래서 호박 수확과 이를 이용한 요리 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정말 신청이 많이 들어오고, 돌아갈 때는 제품구매는 물론 소문도 내 주시더군요. 그렇다보니 저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죠.”

▲ 참샘골호박농원 체험을 즐기는 어린이들.
이에 최 대표는 마을 주민들에게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자 제안했고, 그렇게 회포마을(운영위원장 최근명)이 탄생되면서 마을단위로 체험객을 맞이하게 됐다.
“2004년 팜스테이 마을로 선정돼 체험을 시작했고, 농촌 체험장과 마을 쉼터인 농막 4곳·단체 샤워장도 조성했죠. 2005년 정보화 마을로 선정돼 농산물 전자 상거래를 통한 소득원을 창출했으며, 마을 정보 센터를 구축해 정보화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2008년 녹색농촌마을 사업 유치로 다목적 식체험관과 숙박 시설 등을 갖춤으로써 본격적인 체험 마을이 됐어요. 사실 체험 시작에 앞서 고민 많이 했었어요. 손님맞이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였죠. 하지만 고객들에게 믿음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체험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최 대표와 회포마을 주민들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스토리도 만들어나갔다. 마을에 6개의 정거장도 만들어 관련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면서 마을의 가치를 높여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체험객이 늘었다. 그 결과 연간 6000명 이상이 마을을 찾아오고, 이를 통해 약 6000여 만 원의 마을 소득을 올리고 있다.

흑색멀칭재배법으로 호박농사 함께
호박농원에서는 또 주민들이 맷돌호박 농사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도 하고 있다. 농원에서 연간 사용하는 맷돌호박은 약 200여 톤, 이중 일부는 최 대표 가족들이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부족분은 마을 주민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로부터 계약재배 해 납품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사에 앞서 그는 주민들에게 맷돌호박 재배기술도 알려줬다.
“맷돌호박은 흑색멀칭재배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이 방법을 도입해서 저도 짓고 있고, 다른 농민들에게도 기술보급을 해 드렸죠. 맷돌호박은 고령화된 농민들에게 아주 좋은 작목이라고 생각해요.”

호박이라는 단일품목으로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6차 산업화 농장으로의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 호박농원. 이곳의 가족들은 업무 분담도 확실히 하고 있다. 우선 최 대표는 식품제조·가공을 맡고 있고, 부인 이혜란(56)씨는 영업장 운영, 아들 정환(31)씨는 유통을 맡고 있다. 체험은 마을 주민들이 담당한다.

“저희도 자연스럽게 6차 산업을 진행한 경우고, 소비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농민이 농사를 짓지만 소비자가 관심을 갖고 저희에게 했던 것처럼 의견을 내 주고 또 자주 현장을 방문해 주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1990년대부터 6차 산업을 시작한 일본 지도에는 체험과 로컬푸드 구입이 가능한 농가들이 표시돼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여행을 하다가도 그냥 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런 방식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기획기사는 충남도의 지역언론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그는 농촌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고객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를 위해 호박농원에서는 생산부터 저장,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홍보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호박, 참샘골 이라고 치면 저희 농장이 나와요. 홍보마케팅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저희는 스마트 간판을 전국 최초로 만들었고 앞으로 스마트 명함도 만들 계획입니다. 단거리 무선통신인 NFC를 통해서도, 호박을 심고 수확하고 저장·가공까지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글과 활동 모습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모든 SNS 에 공유하고요. 모든 것을 공개하니 소비자들께서 믿음을 갖는 것 같더군요. 다양한 홍보덕분에 저희도 작년에 5억 매출을 올린 것이에요.”

330여 제곱미터로 시작해 현재는 6만6000여 제곱미터 규모의 땅에 호박농사를 짓고, 저장법을 개발해 가공·유통·체험 등 6차 산업화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호박농원.
1, 2, 3차 네트워크 구축을 이뤄낸 최 대표는 이런 공로로 2013년 제1회 6차 산업경진대회 대상을 타기도 했다. 호박 한 덩이로 6차 산업을 이뤄낸 결과였다. 최근명 대표는 ‘맷돌호박은 인생을 역전시켜 준 작물’이라고 전했다.

이 기획기사는 충남도의 지역언론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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