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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킬리만자로!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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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킬리만자로!④
  • 김현락 재능기부
  • 승인 2015.09.14 18:00
  • 호수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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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속으로, 아산떼사나(고맙습니다)

휴양지의 별장처럼 근사한 롯지의 아침은 서늘하지만 눈부십니다.
앗! 사파리를 시작하자마자 아침밥을 먹는 표범을 봅니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입 안 가득 붉은 살덩이를 물고 있다가 서서히 나무기둥을 타고 내려옵니다. 길고 유연한 꼬리와 대롱대롱 매달린 남은 살코기, 고요 속에 슬픔이 숨어있는, 이런 곳이 세렝게티입니다.     
길옆으로 희고 큰 갈비뼈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지나쳐       
물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는 검은꼬리누 떼를 봅니다. 저 많은 누 떼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말 긴 행렬입니다.
나무라고는 거의 없는 초원에, 그마저도 드문드문, 코끼리가 부러뜨린 나무들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어슬렁어슬렁 코끼리가족이 걷고 있네요. 아침 일찍 나들이라도 가는 모양입니다. 한 무리의 임팔라 속에는 머리 뒤쪽에 검은 깃털 장식이 있는 비서새가 함께 있고, 톰슨가젤과 얼룩말과 기린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초원 저쪽으로는 사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하나 둘, 열한마리의 새끼사자들 가운데로 큰 두 마리가 섞여 있지만 아직은 귀여운 새끼들입니다.


 
또 다른, 동물들의 세계인 응고롱고로에 가기 전에 바람의 부족 마사이족마을에 들릅니다. 귓불이 길게 늘어질수록 미녀·미남인 이들은 구슬로 엮은 넓은 목걸이와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보지는 못하였지만, 마사이족은 그들 부족끼리 서로의 얼굴에 침을 바르는 인사를 하는데, 이는 상대방에게 물을 발라주는 것이 가장 큰 우정과 축복이기 때문이랍니다. 
소똥과 재와 물로 만든 조그만 움막 안에서 사는 그들은 언제나,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달지 않습니다.
소나 염소나 양을 기르면서, 우유에 밀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하루에 2식을 하는 이들의 수입원은, 마을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과, 구슬을 꿰어 손수 만든 팔찌를 비롯한 액세서리를 파는 것입니다.       
환영식을 받고 유치원을 둘러봅니다. 세상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수학을 배우고 국어를 배웁니다.

화산폭발로 생긴 깊이가 600미터
지구에서 가장 큰 분화구 응고롱고로는 마른들판과 초원, 덤불과 숲, 마사이부족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역시 얼룩말과 누, 코끼리가 무리를 지어 먼 곳을 바라보거나 앉아있거나 어슬렁거립니다. 
찻길이랄 것도 없지만 차 앞으로 겁 없이 삼삼오오 검은꼬리누가 지나갑니다. 워낙 많은 누와 얼룩말을 보니 슬슬 감흥이 줄어듭니다. 하마가 사는 마을에는 홍학이 함께 있네요. 낮잠을 자는지 꼼짝 안 하는 하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품이라도 하길 기다립니다. 무엇에 놀랐는지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날갯짓에 햇살이 미끄러져 은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입니다.      
하이에나가, 코뿔소가, 치타가, 멧돼지가 먼발치에 나타났습니다. 사나운 동물들은 같은 종족끼리도 사납게 구는지 꼭 혼자 다니곤 합니다.
쯧쯧, 외로운 한 마리 버팔로 또한 안 그런 척, 씩씩대며 언덕을 오르고 있습니다.
전망대에 오르지만, 워낙 넓고 깊다보니 분화구라기보다는 산의 정상에 오른 듯합니다.
역시, 오늘도 차량 한 대가 고장이 났습니다.

지평선이 된 호수에 분홍빛 물결이 출렁입니다. 레이크만야라호수에 사는 플라밍고 무리라 하는데 직접 볼 수 없어 영 아쉽습니다.
궁둥이가 빨간 원숭이들이 바오밥나무 위에서 길 위에서 정신없이 오락가락하며 혼을 쏙 빼 놓은 응고롱고로가 뿌연 먼지 속에서 멀어집니다.

손가락만한 닭튀김 한 조각과 샌드위치 반쪽, 200미터 쥬스 한 팩, 과자 한 봉지, 한결같이 작은 크기로 구성된 5번의 점심도시락. 한국에서는 말이 끄는 차를 마차라 한다 하니 까무러치듯이 사실이냐 되묻던, 사파리를 하는 내내 동물 한 마리라도 더 보여주려 애쓰던 우리 차를 운전한 마차의 속눈썹 긴 갈색 눈. 머리모양이 예쁘다 하였더니 모델이 되어준 아루샤의 여인.
학학 거친 숨만 내뱉던 산행도, 얼룩말과 누의 세상 사파리도, 점점 기억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신맛이 강하나 쌉쌀한 맛이 잘 조화된, 와인 향을 지닌 탄자니아커피 같은 아프리카의 한 부분, 20대에서부터 70대까지 함께 한 아프리카여행이었습니다. 

언제나 내가 모르는 세계로 향하는 마음은
비록, 본래의 이 자리로 돌아오면 잊힐지라도, 여행지에서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기를, 단순한 이방인이 되어 더 많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늘 곁에서 부딪치는 희로애락에도 무감각했던 정서에서 벗어나 많은 설렘과 탄성을 지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행이 되기를 꿈꾸며
다시, 또 새로운 여행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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