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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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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 김현락 프리랜서
  • 승인 2014.10.20 10:18
  • 호수 10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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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자리엔 반드시 열매를 맺는 ‘대추나무’

어느 집이든 제사상 첫 줄 첫 번째에는 올망졸망한 대추를 놓는다. 대추나무는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열리므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며 붉게 익은 뒤에도 오랫동안 썩지 않고 씨 또한 하나뿐인 것으로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동안에도 깊이 침묵하며 죽은척하고 있다가 늦은 봄이나 초여름 어느 날 문득 초록빛 새순이 터져 나오는데, 때가 될 때까지 늑장을 부린다 하여 양반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반들거리는 잎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자라는 대추나무는,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가시 달린 잎겨드랑이에 어린 연둣빛 꽃봉오리를 여러 개 맺는다. 금방이라도 툭하고 터질 것 같이 앙증맞게 입을 닫고 있는 별모양의 꽃싸개잎이 서서히 잎을 벌리면 황색 꽃밥을 단 5개의 수술은 둥근 암술에 밀려 꽃싸개잎 사이사이로 올라온다. 수술을 받쳐 든 주걱 모양의 근거 없는 잎이 꽃잎 같은, 꽃잎 없는 조그만 꽃은 벌과 파리 등 곤충을 수도 없이 불러 모으곤 한다.

씨방이 자라나 어리고 모난 조그만 열매들은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탱글탱글하게 잎만큼이나 반질반질하게 잘 생긴 모습으로, 또는 울퉁불퉁 짱구처럼 커 가기도 하며 초가을이면 녹갈색에서 갈색으로 익는다. 연두색에서 갈색으로 막 익어가는 대추의 풋풋하면서도 달짝지근하며 아삭거리는 상큼한 맛이란! 
 
옛사람들은 정월 대보름과 오월 단오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하였다. 대추나무 줄기가 하나로 올라오다 둘로 갈라지는 틈에 돌을 끼워 주는 것으로, 시집을 보내 자식을 뜻하는 열매 즉 대추가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을 담아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며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여흥을 즐기며 마음을 나누었다. 이 풍속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으로 양분의 이동을 제한해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중 못되먹은 양반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양반나무로 불리는 나무에 풍년을 빙자하여 점잖지 못하게 놀리는 모습으로 시집까지 보내며 지혜롭게 즐긴 사람들의 해학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광택이 나는 달걀형의 잎은 3개의 큰 잎맥을 그려 사랑을 상징하며, 열매를 맺어야 꽃이 떨어지는 대추의 습성으로 인해 대추가 혼례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조상에 대한 숭배인 후손 번창으로, 대추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처럼 풍요와 다산을 염원하는 것이다.

손끝에 가시가 박히거나 종기가 나면 박힌 가시를 빼고 종기를 터뜨려 덧나지 않게 사용하기도 했던 대추나무 가시는 단단해서 몇 년이 지나도 잘 썩지 않고 그대로이며, 오래된 나무의 가시는 끝부분이 휘어져 찔리면 많이 아프고 잘 빠지지도 않아 조심하여야 한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붉은 대추와 가시로 귀신을 쫒는데 사용하여 광문이나 변소문 앞에 대추나무 가지나 실에 꿴 대추를 걸어놓기도 하였으며, 대추씨를 입에 물고 다니면 병마가 오는 것을 방지 한다 하기도 했다.

혹시 산길이나 들길을 걸으며 죽은 나무에 커다란 돌이 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아하, 시집 간 대추나무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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