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농촌의 미래 개척 방향이 많이 변했다. 1970년대의 식량증산정책에서 80~90년대의 경쟁력 강화정책 등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시 서민을 위한 농산물 가격통제정책을 유지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농업과 농촌은 공동화와 피폐화를 피할 수 없었다.
6차 산업은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으나, 역대 정권마다 강조하는 내용과 목표가 달라 혼선을 빚어왔다.
과정이 어떠했든 현재 농업과 농촌의 미래는 농업과 농식품 제조업, 관광문화산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의 융·복합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 정책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바뀌어 왔고, 6차 산업에 대한 강조도 증가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현장 농업인들에게는 생소하다. 생산만도 힘든데 가공해 판매까지 하고, 거기다 관광산업으로 연결하라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특히 농업인이 6차 산업 영역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의 까다로움은 좌절로 이어지기 일쑤다. 농사일은 기본이고 공장을 만든 후에 가공, 판매, 마케팅, 관광영역으로 확대해야 하니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6차 산업은 현재 국내에서 몇 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농가주도형이 있고, 마을기업이나 체험마을 형태의 마을주도형, 그리고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법인주도형, 지자체단위로 꾸려지는 지역단위주도형 등이 있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1차+2차+3차=6차 산업, 혹은 1차×2차×3차=6차 산업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한, 주민주도형 혹은 주민과 전문가의 결합 등 공동체적 성격을 띠어야 성공으로 가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1, 2, 3차 산업 각 영역의 전문성이 합쳐져서 상호 시너지를 도출하는 것이 6차 산업 성공의 전제조건이라면,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떠한지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현재의 역량으로 6차 산업 실천이 가능한가? 또 앞선 성공 사례들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이번 기획취재의 배경이다.
[글 싣는 순서]
1.충남사례① 청양 ‘칠갑산 무지개’
2.충남사례② 서천 모시마을
3.타 시도 사례① 경기도 남양주 ‘대가’
4.타 시도 사례② 장흥군의 6차 산업
5.타 시도 사례③ 진안군 와룡마을
6.타 시도 사례④ 나주시 화탑마을
7.타 시도 사례 ⑤ 경북 영주시 ‘미소머금고’
8.청양지역 6차 산업의 성공 가능성
수몰 마을의 빛나는 자구 노력
아름다운 경관과 밤하늘의 별로 사람을 모으는 동네가 있다. 전북 진안군 와룡마을이다.
마을 생김새가 누워 있는 용과 같은 와룡마을은 용담댐 건설과 함께 탄생한 마을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원와룡(70가구)과 신정(30가구) 등 2개 자연마을에 100가구가 모여 살던 곳이었지만, 용담댐 건설로 마을이 호수에 잠기면서 10여 가구 20여 명의 주민만 현재의 와룡마을에 남게 됐다.
주민들은 수몰의 아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먹고 살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주민들의 자구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떤 작목을 정해 농사를 지을지, 가공은 어떻게 하고 판매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초기엔 숱한 어려움이 따랐지만, 2003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진안군으로부터 ‘으뜸마을’로 지정된 이후 마을 만들기 교육과 컨설팅을 수시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초기의 주된 공동판매 품목은 산초와 더덕, 산나물 등이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지고 시간이 흐르자 인삼, 고추, 콩, 도라지 등 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특산물로 품목을 확대했고, 생산되는 농산물을 바탕으로 홍삼, 된장, 간장, 참기름 등도 만들었다.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납품량을 맞추기 위해 특산품 재배단지를 조성, 공동생산에 들어갔고 ‘좋은 동네’라는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한층 더 발전해 ‘산촌의 특성을 활용해 도시민을 유치’하기로 뜻을 모았다. 적당한 민박시설과 함께 약초 캐기, 고구마 캐기, 고기 잡기, 별자리 체험, 된장 담그기 등 20여 개의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체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자 와룡마을 농산물과 농가공품은 없어서 못 판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공급물량을 맞추기 위해 인근에 있는 마을과 계약재배를 추진할 정도로 사업이 확장됐다.
더욱이 이 마을에 살고 싶다며 찾아온 귀농인, 귀촌인이 하나둘씩 늘어나 주민도 21가구 40여 명으로 불어났다.
마을 경관과 별을 상품화 하다
와룡마을은 진안군에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통해 성공한 대표 마을로 손꼽힌다. 수몰 마을이 빛나는 마을로 탈바꿈한 중심에는 강주현(58) ‘좋은 동네 만들기 추진운영위원장’이 있다. 강 위원장은 11가구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한 신와룡새마을회를 조직했고, 이후 ‘좋은 동네’ 영농조합법인으로 발전시켰다.
와룡마을은 산촌의 특성에 맞춰 약초 재배를 통해 활로 모색에 나섰고, 생산된 농산물을 산초와 홍삼 등으로 가공해 판매했다. 와룡마을은 생산된 농산물을 마을에서 가공해 판매한다는 ‘지산지공(地山地工)’ 전략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마을 법인인 좋은 동네가 전량 수매하고 수매된 농산물은 가공시설을 통해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 판매된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간장, 참기름, 들기름, 산초기름, 달맞이 꽃씨유, 홍삼액 등이 이곳에서 판매되는 가공식품이다.
와룡마을은 3개 품목, 15종의 농가공품을 만들어 연간 4억5000만원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도시민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모두 주민들이 직접 안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계절 상시 체험프로그램으로는 장승 만들기 체험, 어선체험(민물고기 잡기), 별자리 관찰 체험, 한방 황토찜질, 계절별 산골음식 만들기, 붕어 짚불구이, 두부 만들기, 떡 만들기, 약초동산 약초 탐방, 약초 캐기 등이 있다.
봄 체험프로그램에는 고사리 등 산나물 채취, 산약초 탐험, 영농체험( 파종 및 모종 심기) 등이 있고, 여름 체험프로그램에는 감자(옥수수) 구워먹기, 다슬기 잡기, 반딧불이 관찰, 민물고기 잡기, 모깃불 피우기, 영농체험(감자 캐기, 고추 따기, 고추 태양초 만들기, 옥수수 따기, 상추 따기, 깻잎 따기가 있다. 또 가을 체험프로그램으로는 도토리 줍기, 콩 타작하기, 참깨 털기, 인삼 캐기, 고구마 캐기, 김장 담그기 등이 있으며, 겨울에는 화롯불에 고구마(밤) 구워 먹기, 눈사람 만들기, 싸리비 만들어 마당 쓸기, 개울가 다랑이 논에서 썰매타기, 얼음지치기, 홍삼 증삼 및 가공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이 마을은 밤하늘의 별을 상품으로 내놓은 점이 다른 마을과 크게 구별된다. 마을회관 2층에 굴절망원경과 반사망원경, 혼합형 망원경 등 천체 망원경 3대를 갖춘 천문대를 만들었다. 또 마을회관 위쪽에 ‘천기누설’이라고 하는 천체영상관을 세웠다. 천문대 운영을 위해 강 위원장은 직접 천문지도사 3급 자격증까지 땄다.
천문대는 도시민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주 등 주변 도시지역 학생들의 단체 방문이 잦고, 전문가들도 많이 찾는다.
와룡마을의 성공 비결은 계약재배-농가공-도농교류-직거래를 통해 창출된 경제적 가치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남도 지역언론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