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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요정의 부채, 혹은 초례청의 홍실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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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요정의 부채, 혹은 초례청의 홍실 ‘자귀나무’
  • 김현락 프리랜서
  • 승인 2014.07.14 16:32
  • 호수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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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백세공원이나 구치리, 대봉리의 조그만 개울가에는 몸매까지도 아름다운 나무가 드문드문, 눈에서 멀어지기가 무섭게 새롭게 나타난다. 후텁지근한 장마를 잊게 하는 화려하고 밝은 초록 잎 위에 분홍 꽃들이 앉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부드럽게 물결치며 ‘환희’를 맛보게 한다. 

자는데 귀신 같다 하고, 나무를 베는 기구인 자귀의 자루로 이용했다 하여 ‘자귀나무’, 꽃이 부채 같다 하여 ‘부채나무’, 꽃이 지고 나면 길쭉한 꼬투리에 열매를 맺으며 이들이 겨울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찬바람에 부딪쳐 내는 소리가 여자들의 수다처럼 들린다 하여 ‘여설수’라고도 한다. 아카시나무와 비슷한 자귀나무의 잎은 끝부분까지 양쪽이 똑같은 짝수로 태어나 낮에 펼쳐졌던 작은 잎들이 밤이면 서로 합장하듯 마주 보고 포개진다 하여 ‘합환수‧합혼수‧야합수’, 집안에 심어 놓으면 부부의 정이 깊어진다 하여 신혼부부 방 창가에 심어 ‘유정수‧애정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낮에는 광합성을 해야 하므로 최대한 잎의 면적을 넓히느라 쫙 펼쳐있지만 밤이 되면 수분이 빠져나가 팽압이 감소하면서 잎이 닫혀 지는 수면운동으로, 외부의 자극은 없으나 온도변화에 따라 밤이 되면 잎을 모두 오므리기 때문이다. 최대한 잎을 움츠려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으로, 폭풍우와 같은 자연적인 재해와 잎을 먹는 초식동물들의 공격을 막기도 한다. 더욱 밤에는 양분을 만들 수도 없으니 잎의 표면적이 넓으면 증발산을 통해 나가는 에너지나 수분이 많아지는 것을 막아보자는 스스로의 생존력이기도 하다.

우산살처럼 갈라진 꽃대에 스무 개 정도의 꽃봉오리가 달린다. 발그스름하니 상기된 꽃봉오리 속에는 아랫부분은 흰색이고 윗부분은 분홍색인 수술이 뭉쳐있다. 순한 연둣빛 꽃은 해 지기 전에 피며, 터져 나오는 수술은 몽글몽글 파마를 한 모양으로 시간이 갈수록 곧고 길게 펴진다. 꽃잎의 몇 배나 되는 수술이 다섯 꽃잎 사이에서 고운 명주실을 뽑아내는 모습으로 부챗살처럼 길게 나오면 점점 짙어지는 윗부분의 분홍빛으로 인해 홍색꽃으로 보인다. 

멀리서 분홍빛 자귀나무꽃이 보이면 팥을 심던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은 바깥일로 마음이 좋지 않은 채 들어온 남편에게 이 꽃잎을 띄워 술상을 내었다. 그윽한 꽃향기와 아름다운 꽃, 무엇보다도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아내의 지혜롭고 소박한 마음이 담긴 술을 마시며 부부의 금실을 쌓았다고 한다.
화가 나는 것을 누르고 근심과 초조, 그리고 질투심을 없애는데 효과가 있는 자귀나무. 향기로운 꽃을 말려 베개 속에 넣어두면 향긋한 꽃냄새로 머리가 맑아지기도 하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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