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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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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 승인 2000.02.03 00:00
  • 호수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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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있는 ‘삼절전(三絶傳)’
이 주 형 경기대학교 전통예술감정대학원 석사과정. 서예전공. 운곡면 출신

중국 쓰츠완성의 성도교외에 제갈량 무후사안에는 고목이 하늘을 받치고 푸른 잣나무가 있으므로 주변이 더욱 운치가 있어 기분이 고조된다.
여기에는 관람객이 의외로 많다. 다름 아닌 문장가 배도(裴度)가 문장을 짓고, 당대(唐代)의 명필 유공작(柳公綽)이 글씨를 썼으며, 유명한 조각가 노건(魯建)이 조각을 해서 세운 삼절비(三絶碑)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에도 삼절비가 있다.
그것은 칠갑산 최익현선생의 동상후면에 새겨진 ‘최익현선생상전’이다.
필자는 몇달전 서울에서 단체를 이끌고 고향을 소개하려고 우선 칠갑산에 들렀다.
칠갑산하면 요즘 노래방에서 한창인기가 있어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이렇다할 소개거리가 없서 장곡사, 그리고 요즘 조성했다는 장승공원,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일곱 개의 명당이 있으니 그것을 보면 아무래도 다른 명산을 오르는 것보다 기(氣)를 받는데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억지로 우기면서 칠갑산을 함께 오르기로 했다.
우선 최익현선생 동상 앞에서 묵념의 예를 갖추고 둘러보다가 커다란 환호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1973년도에 민병기선생의 글과 민태식선생의 액(額), 당대의 명필인 여초 김응현선생의 글씨가 후면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삼절전’이 될 수 있다.
거기서 맑은 물을 떠다 세문(洗文)을 하고 탁본을 뜬 다음 다시 우리는 ‘콩밭매는 아낙네상’을 지나 썰렁한 정자에 잠깐 올랐다가 그 앞에 자연석을 억지로 다듬어 컴퓨터글씨로 새긴 것을 보곤, 몇분전 인간의 혼이 빚어낸 유물과는 너무 대조적인 감정이었다.
이것은 한갖 좋은 내용과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기계문명이 빚어낸 값비싼 안내판에 불과해 버린 셈이다.
그뿐이랴, 여기저기 근래에 새긴 표석은 성의를 가지고 심사숙고한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문자는 제2의 언어다. 말은 일회성이지만 문자는 지속성이 있다.
소리(音)는 청탁고저(淸濁高低)가 있어 그 조화로 아름다운 소리가 되기도 하고, 조화를 못 이루면 소음이 된다. 소리중에 아름다운 소리는 자연의 소리요, 예술작품 중에는 자연법칙을 따르는 작품이 으뜸이다.
자연스러운 운율, 자연스러운 동작, 이것은 노래와 춤이 되어 인간이 자연을 흠모하는 아름다움이다.
글씨 역시 그 속에 자연의 법칙에 의한 운필법이 있으니 우리가 서예를 보고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문화는 우리 인류가 존재해 오면서 삶의 방식, 형태, 습관 등에 의해서 인간과 함께 어우러진 산물이며 거기에는 인간의 따뜻한 정신적 가치가 들어 있다.
옛날 사랑방의 화로나 등잔이 지금에는 소용의 가치가 없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지금 새삼 접하게 되면서 여유와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되는 일이 그것일 것이다.
버리면 다시는 체취(體臭)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유산으로 보존만 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후손에겐 더 없이 값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존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일을 도모하든 그것은 미래의 가치를 생각하고 꾀해야 될 일이다.
이쯤에 한마디하자면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성사(成事)에 그치지 말고 돌 하나도 인간의 혼과 공력이 담긴 훌륭한 유물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줘야 될것 아닌가?
앞으로는 이러한 우를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주관하는 관계기관의 숙고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각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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