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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졸업식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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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졸업식 유감
  • 청양신문
  • 승인 2000.02.28 00:00
  • 호수 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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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호 순 작은학교를 지키는 사람들 대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사람들처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민족도 드물다.
주변사람들과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전통 때문이다.
유목생활을 해오던 고대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에 농경사회를 정착시키면서 지리적 이동이 거의 없이 생활해 왔다.

20세기 후반들어 산업사회로 바뀌었어도 헤어짐에 대한 민족적 정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유행가 가사의 일관된 주제가 이별, 석별, 고별, 작별에 관한 노래다.

헤어짐을 유달리 아쉬워하는 우리사회에서는 송별문화도 각별하다.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하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서너차례 반복한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우리의 각별한 송별문화에서 돌연변이가 생겼다.

보내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모두 무성의하게 치르는 송별행사가 생긴 것이다.
바로 해마다 2월이면 일제히 치뤄지는 각급 학교 졸업식이다.

외국 학교의 졸업식이 한 단계의 교육과정을 마치는 것을 축하하고 자축하는 축제로 치뤄지는 반면, 우리의 문화속에서 졸업식은 졸업의 기쁨보다는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누는 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요즘의 졸업식은 헤어짐의 아쉬움은 커녕, 졸업의 의미조차도 퇴색해버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졸업식으로 변질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그동안 짓눌렸던 억압을 분출시키느라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뒤집어 쓰는가하면, 대학졸업식에서는 졸업생들의 행사장 불참으로 인해 졸업식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다.

산만하고 초라한 졸업식장은 그나마 참석한 교수, 학생, 학부모들을 민망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변질된 졸업식 풍경은 삐뚤어진 우리 교육 풍토가 그려낸 그림이다.
학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 사회진출하기 위한 단계로만 인식되고 있다.

학교교육을 인격의 도야와 학문 연마의 기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잊혀진지 오래다.
대학입시를 위해 고등학교가 존재하고, 회사취업을 위해 대학교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학창시절은 사람됨됨이를 갖추는 시기가 아니라, 자신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력을 키우는 기회라고만 가르쳤다.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의 가치기준을 결정하고, 자기 주변사람과 주변사회를 이해하는 기회로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학생들에게 학교는 사랑과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위와 억압과 강요의 근원이었다.
학교의 각종 제도들은 학생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교사와 관료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운영되었다.

학생들을 설득할만한 실력도 자질도 없는 교사들은 학생들을 권위와 체벌로 짓눌렀다.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는 교사는 무능력한 교사나 운동권 교사라고 매도당해야 했다.

그결과 학생들에게 졸업식은 자격증 발급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 졸업식은 아쉬움의 장이라기 보다는 강요와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부끄러운 졸업식, 참가하기 민망한 졸업식이 없어지려면 우리나라 학교교육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사진이나 달랑찍고, 축하객들 끼리 북적거리는 학교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 한끼 때우고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지난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그사이 자신이 성장한 모습을 자축하고, 장차 도전하게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희망과 각오를 다지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럴려면 학교에서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학교 교육이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내는 학교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누고, 인간적 성숙을 축하하는 졸업 본래의 의미가 담긴 졸업식을 치를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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