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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밌는 줄 미처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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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밌는 줄 미처 몰랐어”
  • 이순금 기자
  • 승인 2009.04.13 10:19
  • 호수 7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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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실 한글공부 ‘낮에도 밤에도 좋아’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 진 가운데 목면 지곡 1리에 사는 이송순(67·안목골) 할머니의 하루는 예년에 비해 더 바빠졌다.
평소 하는 가사 일과 농사준비에 더해 또 한 가지, 바로 지난 4개월 동안 열심히 배운 한글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집에서 틈틈이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 할머니는 지난해 12월부터 지곡1리 마을회관에서 전문한글교사 과정을 수료한 교사들로부터 한글교육을 받았다.
겨울바람이 매서워도,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에도 이씨 할머니는 왕복 1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걸어 다니며 한글교육을 받았고, 교육이 계속되면서 그토록 낯설기만 했던 글씨를 읽고 쓰고 하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런데 지난달 말로 지곡 1리에서 진행됐던 한글교육이 종강됐고, 때문에 이씨 할머니는 이후 집에서 틈만 나면 책과 노트를 펴 놓고 혼자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어렸을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돼 버렸죠. 그동안 조금씩 읽었어도 쓰는 것은 어려웠어요. 가끔 텔레비전에 무료 한글교실에서 공부하는 노인들을 보면 부러워하기도 했죠. 그러다 한글교육 한다는 소리를 듣고 참여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런데 농번기가 시작되니까 함께 배우던 할머니들이 계속 빠지고, 결국 끝나버렸어요. 이대로 안하면 잊어버릴 것 같아 집에서라도 조금씩 하는 거예요. 다른 마을은 농번기 때도 밤으로 시간을 옮겨 계속 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아니면 겨울에 다시 시작해도 좋고.” 이씨 할머니의 말이다.
이씨 할머니는 4개월에 걸쳐 35회 계속되는 동안 단 한차례의 결석도 없었고 늘 제일 먼저 나와 수업준비를 했을 정도로 모범학생이었다는 것이 그를 가르쳤던 전문한글교사 최선규씨의 말이다.

청양군은 지난해 12월부터 군내 각 읍면별 1개소씩 총 10개소에 대해 ‘찾아가는 초롱불 성인한글교실’을 시작했고, 지난 3월 20개를 추가해 현재는 지곡 1리처럼 농번기가 되면서 종강한 3곳을 제외하고 총 27개소에서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하 한글교실)
한글교실에는 전문한글교육을 마친 교사 4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여러 여건상 한글을 익히지 못한 지역민들이 마을별로 20여명 정도씩 농한기에는 낮 시간을, 그리고 농번기가 되면서부터는 밤 시간을 이용해 교육을 받고 있다.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어른들에게 인기가 너무 좋습니다. 이씨 할머님처럼 농번기철이라 바쁜데도 시간을 옮겨가면서 계속 하고 싶다고 하실 정도로요. 어른들의 사정에 맞추다보니 지곡1리처럼 본의 아니게 운영이 중단된 곳도 있고 여건상 아직 시작하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한글교육을 통해 어른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특히 배움으로 인해 좀 더 활기 찬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군 주민생활지원과 정성희 평생교육담당의 말이다.

한글교실 시작 5개월째, 어른들은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요즘은 글씨라고 생긴 것은 모두 한번씩 읽고 써보는 버릇이 생겼다”며 입을 모은다. 또 “기억력이 떨어져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계속하면 익혀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졸린 눈을 비비면서 공부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다”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인들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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