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2 (수)
“여성이지만 당차게 일하는 손갑순 이장이 큰 자랑”
상태바
“여성이지만 당차게 일하는 손갑순 이장이 큰 자랑”
  • 박미애 기자
  • 승인 2009.01.19 11:13
  • 호수 78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과 사람들- 청양의 자연마을을 가다: 목면 송암2리
▲ 마을을 위해 누구보다 애를 쓰고 있는 (왼쪽부터)손갑순 이장, 이규원 노인회장, 박인자 부녀회장, 손종화 새마을지도자.

목면 송암2리를 방문한 지난 13일 마을에서는 대동계가 한창이었다. 대동계를 위해 한데 모인 주민들은 이장을 비롯해 앞으로 송암2리를 이끌어나갈 임원진을 뽑기 위해 마을회관에서 늦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네만한 사람이 어디 있어. 마을 위해 조금만 더 힘써줘.”
“부녀회장님 없으면 저 일 못해요.”
주민들 간 몇 번의 대화와 토론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고심 끝에 이날 송암2리 임원진으로 손갑순(55) 이장, 이규원(76) 노인회장, 손종화(52) 새마을지도자, 박인자(67) 부녀회장을 뽑았다. 새로 선출된 이규원 노인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재선임을 받았다.
목면 송암2리는 24가구에 51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 장구동, 나분동, 바둑골, 중새터, 장금절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송암2리에는 청양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 모덕사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여성이장이 활동하고 있는 마을로 더 유명하다.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장사회에 청양군 최초로 송암2리에서 손갑순 이장이 탄생했던 것.

“제가 이장이 된 것은 2003년 대동계에서였어요. 읍내에 회의가 있어 갔다 왔더니 동네 분들이 난데없이 손 이장 축하한다며 박수를 치는 게 아니겠어요” 하며 손갑순 이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주민들의 만장일치로 얼떨결에 이장이 된 손 이장. 처음에는 과연 주민들의 믿음대로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일주일 정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손 이장은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었어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죠. 하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고 지지해주셔서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 주민들이 ‘손 이장’하고 불러주는 게 무척 낯설고 부끄러웠다는 그는 이제 이장일 6년이 넘어가는 베테랑으로 주민 신임은 물론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화합과 마을발전을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우리 마을에서 손 이장 인기가 최고지. 여성 이장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손 이장을 보니 남자들만 할 게 아니라는 반성이 들더라구. 웬만한 남자들은 우리 손 이장 따라오지도 못혀.”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손 이장을 칭찬하고 있다.

최익현 선생의 민족혼 기리는 마을
송암2리 장구동에는 조선말기 유학자이자 항일의병 운동가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14년 창건된 ‘모덕사’가 있다.
창건이후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된 모덕사는 현재 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영정 및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유품도 전시돼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영당을 비롯해 고택과 중화당·장서각·춘추각·유물전시관 외에 관리사무소가 있으며, 의병을 모집한 4월 13일과 순국한 음력 9월 16일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추모제가 봉행되고 있다.
이 같이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송암2리 주민들은 무엇보다 마을화합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항상 이웃을 배려하며 웃어른을 내 부모와 같이 모시는 등 효행심도 으뜸이다.

또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18일 특이한 제를 지내기도 한다. 94년 12월 송암2리는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마을회관을 짓게 됐다. 정부보조금이 4000만원이었는데 회관을 짓기에 부족하자 출향인,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았다.

이때 건너 마을에 홀로 사시던 고 이순덕 할머니가 평생 일구어온 자신의 농토를 주민들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도록 논 330제곱미터(100평)를 내놓고 그 이듬해 나머지 논 2247제곱미터(680평)도 마을에 기탁했던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고 이순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1년부터 매년 할머니의 생신인 음력 12월 18일 할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 마을에는 귀한 보물이 있는데 바로 미궐산 중턱에 있는 ‘할미바위’다. 옛날 마을에 남씨라는 아주머니가 살았는데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할미바위에 불공을 드리고나서 떡하니 아들을 낳았다. 해서 지금도 주민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이곳 할미바위로 가서 소원을 빈다고. 송암2리가 지금처럼 작기만 한 동네는 아니다. 한때 58호에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생활했던 적도 있다.

원래 모덕사가 위치한 장구동에도 17호가 넘는 주민들이 생활했는데, 1983년 모덕사 성역사업으로 그 곳에 주민들이 거주할 수 없게 되고, 1984년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논이 수몰돼 주민들이 한둘 떠나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55세인 손 이장이 마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젊은이로 꼽힐 정도로 노인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빈집만 있던 중새터에 서울서 살다 내려온 외지민들이 3가구나 내려와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더 많이 송암2리에 정착해서 묵어 있는 땅들을 활용해 터를 잡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가구 수도 얼마 없고 노인들이 많은 송암2리지만 주민들은 너도나도 “그 어느 마을보다 주민들 단합이 잘되고, 이장이 마을일을 열정적으로 잘 이끌어나가는 등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라며 마을자랑에 입을 모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