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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재래시장 안방마님 “40년 단골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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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재래시장 안방마님 “40년 단골도 많아요”
  • 이순금 기자
  • 승인 2009.01.02 23:39
  • 호수 7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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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새우젓 장사로 7남매 키운 이종덕 할머니
5일장이 열리는 정산 재래시장에 가면 오늘 소개할 우리의 이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겨울 양식 중 하나인 김장김치 담기가 한창일 때면 유난히 바쁜 사람들 중 한 명인 이종덕 할머니(78·정산면 대박리)다.
이씨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정산 장날이면 같은 곳에서 새우젓 장사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단골도 많고, 그 덕에 “7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새해가 밝았다. 모두들 ‘요즘 살기 너무 어려워’라고 외치지만 정작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정산재래시장 안방마님 이씨 할머니는 평생 넉넉하지 않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꿋꿋이 헤치며 생활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다.

5일장이 열리는 정산 재래시장에 가면 오늘 소개할 우리의 이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겨울 양식 중 하나인 김장김치 담기가 한창일 때면 유난히 바쁜 사람들 중 한 명인 이종덕 할머니(78·정산면 대박리)다.
이씨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정산 장날이면 같은 곳에서 새우젓 장사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단골도 많고, 그 덕에 “7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새해가 밝았다. 모두들 ‘요즘 살기 너무 어려워’라고 외치지만 정작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정산재래시장 안방마님 이씨 할머니는 평생 넉넉하지 않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꿋꿋이 헤치며 생활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다.

“내가 벌어야 살 수 있었어”
할머니를 소개한 사람은 정산재래시장번영회 강희갑 회장과 주변 상인들이다. 곧 팔순을 앞두고 있음에도 항상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 생활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할머니 댁에서 시장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항상 그렇게 걸어 다니세요. 아침 7시 조금 넘으면 도착해서 저녁 7시까지 일을 하세요. 젊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 힘들죠. 꾸준하십니다.” 이웃들의 말이다.

주변 이웃들의 말처럼 이씨 할머니가 이처럼 팔순이 가까워 올 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물론 아직 건강하게 움직이면서 용돈 벌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이지만 또 하나 시집와 지금까지 자신이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어려웠던 탓에 그 때부터 해 온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이씨 할머니의 말이다.
이씨 할머니는 정산면 소황리가 고향으로 19살 때 해남리 홍형복씨와 결혼 후 7남매를 두었으며, 지금은 대박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은 모두 출가했으며, 남편 홍씨는 17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6남매 중 막내였고 친정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시댁이 살만하다는 중매쟁이 말을 듣고 시집을 갔는데, 7남매 중 둘째였던 남편은 열세 살 위였고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이었어요. 놀기도 좋아했고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 그러다보니 내가 벌어야 살 수가 있었어요.”
이씨는 결혼 후부터 남편을 대신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현재 마흔 세 살인 큰 아들이 두 살 되던 해부터 새우젓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일을 벌써 40여년 넘게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자식 잘 키우려고 버스도 안 타
“새우젓 장사를 시작할 때 한참 아이들이 클 때니까 버스비 한 푼이라도 아껴 용돈 조금 더 주려고 걸어 다녔어요.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버스를 안 탔죠. 또 버스 시간이 내가 나오는 시간과 맞지 않았어요. 나는 6시 30분이 채 안 된 시간이면 나와 차를 타야 하는 데, 버스가 없었지. 또 빨리 와야 하나라도 먼저 판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그냥 걸어와요. 그러다보니 습관이 됐어요.”
버스비를 아껴 아이들 용돈으로 좀 더 주려고 걸어서 장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것이 습관이 됐다는 그. 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어렵지만 꾸준히 장사를 해 7남매를 키웠고, 지금은 모두 출가해 각자 자리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

“남편이 생존해 있을 때 딸들은 다 여위었고, 아들 셋만 저 혼자 여위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남들처럼 넉넉하게 못 가르쳐서 아직도 가슴이 아파. 그래도 고마운 것은 다들 알아서 잘 해 줬고,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거죠. 지금은 혼자 있는데 가끔 적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장사 다니고 하니까 몸은 힘들어도 심심한 줄 몰라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정산 장이 서는 날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이씨 할머니를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다. 그 시간이면 할머니는 벌써 팔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또 평상시에는 이곳저곳 품삯을 받고 일을 하러 다니느라 쉬는 날이 없다.

“밤도 따러 다니고, 배도 따고 고추도 따고, 밭도 갈고 항상 일하러 나가요. 집에서 심심해서 못 있어요. 사람들 만나 재미있고 용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요즘 들어 가끔 허리가 속을 썩여 약을 먹는다는 이씨. 그래도 그는 아직 일 할 수 있고,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씨 좋고 착실하고 세상에 이런 분 흔치 않아요. 장사도 진실하게 하니까 단골손님도 많고요. 나도 30년 넘게 옆에서 장사를 했어요.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는 법이 없고, 정말 본 받을 분이에요.”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장사를 하고 있는 신상윤씨(62)의 말이다.
얼마전만해도 정산장이 서는 날이면 손님들로 북적북적 댔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재래시장처럼 손님 발길이 많이 줄었다.

“김장철에 보통 4통 정도 팔아요. 또 금초 하러 왔다가도 들려 사가고 그러지. 마음 독하지 못해 남보다 후하게 줘서 그런가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요. 또 이렇게 시장에서 파는 사람이 나 혼자다 보니까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고.”
주변 상인들은 이씨 할머니를 보고 “건강 허락 할 때까지 장사 하세요”한단다. 그 말에 이씨는 “그러겠다”고 답한다. 건강하니까 못할 것이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없는 사람은 몸 고되게 일해서 먹고 살 수뿐이 없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으니 다행이지. 이것마저 못하면 어떻게 살아.”

새우젓사발에 흐르는 정
이씨 할머니의 부지런함을 보고 주변 상인들은 “노인도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데 요즘 젊은 사람들 빈둥거리는 것 보면 정말 답답하다”고 말한다.
이씨 할머니는 팔십 평생 바쁘게 일하고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또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 점점 눈도 흐려져 있단다. 하지만 요즘도 직접 광천 장에 가 물건을 직접 떼다 파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은 남들 못지않다.

‘내가 벌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는 이씨 할머니.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아직 일 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단다.
이씨 할머니를 만나던 날 유난히도 추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자가 만나러 간다는 말에 오랜만에 외출이라도 하듯 새 옷을 예쁘게 차려 입고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 장사를 하며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가득 삶의 주름이 깊게 파인 모습에 코끝이 시큰 해 져 왔다.
이종덕 할머니는 요즘도 정산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항상 같은 자리에서 새우젓 사발에 정까지 듬뿍 얹어 단골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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