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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손바닥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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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손바닥만한 글
  • 청양신문
  • 승인 2000.05.29 00:00
  • 호수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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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귀향
어린날, 5일 미당장날이면 청남천쪽에서 나무묘목을 한지게 지고와 파고 가던 사람이 있었다.
칠갑산을 돌아 내려온 청남천은 새벽안개가 자욱해 있었고 묘목을 팔던 사람은 향나무, 밤나무 온갖 나무묘목을 장판에 쏟아 놓고 그것들이 다 팔리면 저역 어스름을 휘적휘적 걸어 청남천쪽으로 사라지곤 했었다.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어린날 고향을 떠나 대전, 서울, 일본 등 객지를 떠돌며 글쟁이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잊지 못했던 고향 그 미당을 거의 10여년에 가 보았다.
대하소설을 씁네하고 산사(山寺)를 떠돌며 계획했던 15권 분량의 소설 마지막권을 출간하자 오랜 지병에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유명 소식을 듣고 새벽을 달려 고향에 도착한 날은 눈이 내렸었다.
은산에서 태어나 미당에서 성장하고 장가를 들고 큰 자식인 나를 나으셨던 아버지… 평생을 노동으로 사시다가 끝내 죽음으로 그 휴식을 얻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한과 꿈을 알기에 산을 내려오는 마음은 무겁고도 무거웠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산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줬던 고향친구와 잠깐이나마 얘기를 나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이제껏 쭉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지어온 그 친구는 지금은 산에 염소를 방목하고 읍내에 건강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힘들면 가끔 찾아와 쉬었다가 가. 부모가 가고 없어도 고향은 남아 있잖은가?”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일본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IMF로 일본으로 노무자 취업을 왔다는 청양이 고향이라는 사람을 만나 칠갑산이며 까치내며 청양을 얘기하는 것만으로 족히 몇시간을 반갑고 즐겁게 보냈었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보고 사셨던 산이며 들이며 그 모든 풍광(風光)을 바로 다음 세대인 나와 또 다른 세대들이 보고 자란 까닭에 타국만리(他國萬里) 낯선 땅에서도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피가 통하는 탓이다. 밟고 살았던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한 것이다.
다시 고향에 와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오래전에 산이 되어 계신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무덤 근방으로 또 다른 산이 되어 가신 아버지…
고향땅은 이렇게 폐허의 가슴이 되어 돌아온 탕아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또 다른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준다.
부모의 마음으로 농부의 마음으로 그러고 보니 고향은 어찌 그리 부모의 마음을 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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