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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구나무 아래 정겨운 마을의 전통 이어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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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구나무 아래 정겨운 마을의 전통 이어 가야죠”
  • 김홍영 기자
  • 승인 2008.12.08 15:20
  • 호수 7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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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 숙원사업: 정산면 학암리
▲ 최근 하우스 고추 농사를 시작한 학암리 주민들. 올 고추 생산량이 증가하여 하우스 농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산에서 미당으로 가는 길을 지나다 보면 공사가 한창인 곳이 있다. 공주-서천 고속도로의 나들목 공사가 한창인 이곳이 정산면 학암리다.
“우리 마을이 정산에서 미당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예전부터 교통이 좋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입니다.”
최상규(53) 이장은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교통량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마을에도 좋은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입로가 들어서는 곳은 학암리서 가장 큰 자연마을인 마근동.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자연마을로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둥구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정초에 둥구나무제를 지내는 나무다.
“원래는 몇 아름되는 큰 나무였는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가지가 부러지더니 살지 못하더라구요. 오랜 세월 마을 입구에 서서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던 나무였는데 그냥 있을 수 있나요. 그래서 이 나무를 20여 년 전에 다시 심었어요.”
주민들은 다시 심은 나무에서도 매년 둥구나무제를 지내며 마을의 전통을 이어갔다. 정월 열 나흗날 밤 12시, 한해 무사태평하고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제를 지내고 다음날 주민들은 풍물을 치고 떡을 나눠 먹었다.
둥구나무제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전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제사를 지내지 못한 것이 무척 안타깝다는 최후근(72) 노인회장. 그 절차가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번거로운 것이 되었고, 그나마 제사를 주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제를 지내지 못한 이유라고 말한다.
“지금 마을 사람들 사이 둥구나무제를  지내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요.”
최 이장은 제사를 다시 지낼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며 예전처럼 나무제를 지내며 공동체 의식을 다지자는 마을 주민들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둥구나무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무이다’라는 최 노인회장의 말은 둥구나무가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원예작물 생산 고소득 방안 모색
“추운 북쪽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서 있어 마을이 지대가 높은 산골이지만 기후가 온화한 편입니다. 저 어려서 삼베와 모시 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최 노인회장은 마을 지형이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로 모시와 삼을 재배하는데 학암리가 좋은 땅이었다고 말한다. 모시하면 정산 마근동 모시라 할 만큼 최상품 모시를 만들던 마근동. 현재는 65가구에 1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논농사와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다.
“우리 마을이 거의 수도작만 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아요. 농사를 여러 가지 지어야 소득이 안정적인데 벼 수매 가격만 쳐다보고 있으니 힘들죠. 올해는 고추 농사도 좋지 않았어요.”
벼농사와 노지 고추 농사를 짓는다는 한 주민의 한 해 농사 결과는 그가 땀을 흘린 노력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소득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몇몇 주민들은 하우스  고추 농사를 시작했는데 고추 생산량이 전해 비해 많이 늘었어요.”
최 이장은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고추작목반을 만들어 하우스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하우스 농사를 지었던 이들이 좋은 결과를 맺으면서 고소득원을 올릴 수 있는 작물 생산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원예작물 농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채소와 과일 등 하우스 농사 규모를 늘려서 소득원을 다양화 시켜야지요.”
최 이장은 몇몇 농가를 중심으로 현재 원예작물 농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하우스 농사로 마을의 살림살이에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을의 이름 유래한 ‘학바위’
주민들에게 학암리라는 마을의 이름이 유래한 학바위를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경지정리하면서 그 바위가 묻혀서 지금은 안 보여요. 예전에는 잉화달천 물길이 지금과는 달리 산 밑으로 흘렀는데 아주 깊었어요. 거기에 바위가 있었는데 학이 날아와 놀기도 하고, 선비들이 낚시를 하기도 했지요. 선비들이 그 바위에 학암이라는 글씨를 파 넣었다고 하여 동네 이름이 학암이 되었다고 해요.”
최 노인회장은 실제로 학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며 마을 이름의 유래를 간직한 바위이니 만큼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묻혀버린 학바위 이야기를 하며 잉화달천으로 주민들과 발길을 옮겼다. 이제는 물길이 변해 학이 놀던 바위는 없지만 대신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지막이 흐르는 물가에 선 주민들은 예전에 이곳의 풍광이 꽤 좋았다고 말한다.
“우리 마을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소중한 전통이 많은 마을이에요. 사라져 가는 것에 아쉬움만 가질 것이 아니라 다시 찾고 이어 나가는데 힘써야지요.”
태어나고 살아온 터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 나가려는 학암리 주민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둥구나무 아래서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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